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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글판 가을 여행]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한 제주 사려니숲길

여름의 전령사 매미가 사라지고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가 찾아와 가을을 알려줍니다. 어김없이 철을 따라 찾아온 귀뚜라미는 고요한 밤이면 나지막하게 울어댑니다. 그 소리에 읽던 책을 덮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귀뚜라미는 야행성이지만 한낮에 들판이나 숲 속에서도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광화문글판 가을여행을 위해 귀뚜라미 소리를 찾아 다녔습니다. 벼가 익어가는 들판에서 무르익음을 재촉하듯이 울어대고, 숲 속에서는 메뚜기와 여치와 함께 합장을 합니다.

제주도 사려니숲길. 아직 여름 끝자락이 남아 있던 무더위를 서식하는 듯 가을비가 촉촉하게 내립니다. 24° C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는 귀뚜라미의 노래를 듣기에 가장 좋았습니다.

아메리카 인디언에게는 '자연의 온도계'가 되어 주었다는 귀뚜라미는 인간과 가까운 곤충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80년 된 다양한 종류의 삼나무의 전시된 이곳 사려니숲길은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연주와 풀벌레 우는 합창소리에 자연 음악회가 열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붉은 흙이 깔려있는 사려니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건강해지는 것 같아서 되돌아가지 않고 정처 없이 시간을 잊고 걸어봅니다. 걸을수록 마음 깊은 곳까지 신선함이 전해져 옵니다.

삼나무가 빼곡히 우거져 있어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나무는 늘 우리에게 주기만 하는 고마운 존재임을 숲에 오게 되면 느낍니다.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에서 사려니숲길은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사려니숲길에서 80년을 머무른 곧게 뻗은 삼나무 숲길을 걸으면서 마음의 독성을 제거합니다. 나무가 뿜어내는 산소가 내 안으로 들어보다 보면 어느새 맑아집니다.

나뭇잎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음악회에 한몫을 합니다. 바람의 선율을 타고 가볍고 맑은소리를 냅니다.

마치 나비가 날아와 앉은 것 같은 모양의 꽃은 가다가 발길을 멈추게 합니다.  

템포도 느리고 소리는 무거운 것이 마치 첼로의 연주처럼 느껴집니다.

노랑나비도 있고 분홍 나비도 있고 꽃잎의 색이 달라서 보는 이로 하여금 삼나무 솔잎의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는 조금 무겁게 들립니다.

80년을 굽지 않고 곧게 뻗은 삼나무에서 많은 것을 느낍니다. 하늘만 향해 자라 온 삼나무는 어디까지 닿을까 궁금함도 생깁니다. 

나란히 걷는 뒷모습을 보니 정겨워 보입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인간만 필요한 것은 아닌 듯합니다. 보이지 않은 귀뚜라미 소리에도 밝게 비추는 햇볕도 나무의 숨소리도 그 모든 것이 사람을 키워가는 듯합니다.

움츠리던 꽃망울이 별처럼 빛나며 활짝 피고 그 안에는 검붉은 열매가 얼굴을 내밉니다. 영롱한 구슬 같은 열매는 무엇이 될까요?

걷기에 좋은 날씨지만 인적이 드물지만, 그래서 더욱 귀뚜라미 소리가 잘 들리는 것 같네요.

 또로 또로 또로 찌이 찌이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뒹구는 모습에서도 가을이 느껴집니다. 가을은 귀뚜라미 소리를 타고 우리 귓가에 앉아 속삭이기 시작합니다.

들리지 않으면 더욱 마음을 고요히 하고 들어보세요.

http://kyobolifeblog.co.kr/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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