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게 금어기가 끝났다. 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희소식일게다. 사실 나는 이 맛 좋다는 꽃게의 맛을 전혀 몰랐다. 먹기도 불편하고 무슨 맛인지도 잘 모르겠는 꽃게에 사람들이 왜이렇게 열광하는지 의아했다. 가을이면 살오른 꽃게들을 맛보러 강화도니 소래포구를 찾는 이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나에게는 꽃게나 게맛살이나 거기서 거기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 식성도 변한다고 최근에 간장게장에 도전했다. 평소 비리다고 간장 한번 찍어 먹기도 힘들어 했던 음식이다. 아내는 간장게장을 정말 좋아하는데, 비린 맛을 못견디는 나 때문에 자주 맛보지 못하는게 미안해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의 간장게장 첫 경험은 태안 '화해당'에서 시작되었다.
꽃게 금어기가 끝났다. 꽃게는 그 개체수 보존을 위해 4~6월, 9~11월에만 한시적으로 조업이 가능하다. 꽃게에는 딱히 제철이랄게 없지만 봄에는 알 밴 암게가 가을엔 수게가 맛이 좋단다. 가장 맛이 좋은 봄철 암게를 제철 꽃게라 칭하기도 한다. 우리는 오늘 이 암게로 만든 간장게장을 맛보러 갈 것이다.
태안 가볼만한 곳(화해당 주변), 연포 해수욕장 & 신진항
아직 저녁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 우리는 태안에 도착했다. 아직 배도 안고파서 일단은 가까운 연포 해수욕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날은 뜨거웠지만 해수욕장은 텅텅 비어있었다. 순전히 게장 한번 맛 보자고 찾은 태안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연포 해수욕장에서 그저 시간을 죽였다. 바닷가 주변을 산책하며 배가 꺼지기만을 기다렸다. 배에서 밥달라는 신호가 오기만를 기다렸던 것.
'연포 해수욕장'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한켠에 묶인 강아지(?) 한마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우리는 연포해수욕장만으로도 부족해 결국 신진항까지 구경을 갔다. 신진항을 한바퀴 둘러볼 즈음 드디어 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이제 그냥 지나쳐온 화해당으로 이동할 시간이다.
연포 해수욕장에 이어 우리는 신진항으로 향했다.
한산했던 연포 해수욕장과는 달리 신진항은 활기 넘쳤다.
태안 간장게장 맛집, 화해당
화해당은 게장 맛집으로 아주 유명한 식당이다. 특히 올해 수요 미식회에 소개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태안에 위치한 화해당은 번화가가 아닌 외딴곳에 위치하고 있어 차가 없이 찾아가기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럼에도 대기표를 받지 않고서는 그 맛을 볼 수 없는 그야말로 가장 핫한 게장 맛집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찾았던 시점은 수요 미식회에 소개된 직후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진을 치고 게장을 맛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해수욕장에서 시간을 보낸 우리는 아차싶었다. 무조건 일찍와서 대기표를 받아야했던 것이다.
태안 간장게장 전문점 화해당,
주차장이 넓고 주변이 한산해 주차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듯하다.
도착해 대기표를 받는 우리를 보며 주인장은 난색을 표했다. 게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대기표를 무한정 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찾아오는 손님을 대차게 되돌려 보낼만큼 모진 성격을 갖지도 못해 난감해 하고 있었다. 우리는 게장 하나 맛보자고 서울에서 태안까지 간만큼 그냥 되돌아 갈 생각이 없었고 나눠준 대기표를 부여잡고 우리가 호명될 때만을 기다렸다. 기다리다보니 대기표를 받지 못해 그냥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표를 받고도 기다릴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냥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우리는 차례를 기다리며 가게 앞 정원과 주변을 둘러 봤다. 가게 주변은 온통 논이다. 어찌나 외진 곳인지 주변에 정말 아무것도 없다. 대기 번호를 받고 어디를 좀 둘러 보려해도 갈만한 곳이 한 군데도 없다. 그래서인지 가게 앞 정원이 제법 잘 가꾸어져 있다. 기다리면서 둘러 보기에 아주 좋다. 번호표 시스템은 아무래도 줄을 서서 기다리지 않아도 되니 이런 점이 좋다.
화해당은 외진 곳에 위치해 주변에 아무런 볼거리가 없다.
논으로 둘러 싸여있다.
주변에 대기하면서 갈 곳이 없는 탓인지,
정원이 예쁘게 잘 꾸며져 있다.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할지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도착한 시간이 브레이크 타임이라 대부분의 테이블이 비어있었고, 우리 앞 번호를 받은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떠나버린 탓에 우리는 생각보다 빨리 자리할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기다리는 사람들로 이 테이블 모두가 가득 찼었다.
수요 미식회 방영 이후 찾아드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안내글을 붙여 놨다.
사장님은 차라리 방송 전이 나았다는 푸념을 하기도 했다.
우리는 햇빛이 잘 드는 창가쪽에 자리를 잡았다. 앉자마자 간장게장과 찰돌솥밥이 나오는 메뉴(₩28,000) 2인분을 주문했다. 이 집의 게장을 맛보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왔고,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원래 게장을 좋아하는 아내도, 처음으로 게장을 맛 보기로 한 나도 기대감이 커질대로 커져있었다.
우리는 찰돌솥 간장게장 정식(1인분 \28,000) 2인분을 주문했다.
우선 밑반찬들이 차례로 준비됐다. 계란찜, 배추전, 나물류와 젓갈까지 푸짐한 한상이 차려졌다. 반찬들이 정갈하게 그릇에 담겨져 나왔다. 게장을 원래 안먹던 나로서는 오늘 게장을 먹기로 다짐하지 않았어도 밑반찬에 맛있게 한끼 해결하고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국이나 냉국 등 국물이 따로 나오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밑반찬은 깔끔하고 맛있었다.
따뜻할때 한숟가락 퍼먹은 계란찜이 일품이었다.
흑미와 콩이 들어있는 돌솥밥이 나왔다. 간장게장은 맛이 짠 만큼 아무래도 밥과 곁들여 먹어야 한다. 그래서 밥맛이 상당히 중요하다. 화해당의 돌솥밥은 밥알에 윤기가 돌고 알알이 뭉개지지 않고 살아있어 탱글탱글해 보였다. 한 숟가락 떠서 후후 불어보니 밥 특유의 구수하고 달달한 냄새가 코로 들이닥쳤다. 입 안에 들어온 밥알은 무르지 않고 탄탄해 씹는 맛이 좋았다.
돌솥에 끓여나온 밥에는 흑미와 콩이 들어있었다.
잘 지은 밥이 간장 게장과 잘 어울렸다.
드디어 메인 메뉴 간장게장이다. 화해당은 봄철 알을 가득 품은 암게만을 재료로 간장게장을 담근다. 알이 가장 가득 들어찬 4월에서 5월 안흥항에서 잡아올린 암게를 대량으로 구매해 급속 냉동시켜 일년 내내 사용한다. 이러한 급속 냉동을 통해 신선도를 유지하고 일년 내내 같은 맛의 게장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4월~5월에 잡은 암게를 급냉해 간장게장을 담그기에
언제가더라도 알이 가득찬 간장게장을 맛볼 수 있다.
간장게장 정식이 한상 가득 차려졌다.
간장게장 자연의 색이 정말 예쁘다. 입 맛을 돋군다.
접시 위에서 두마리의 암게가 수줍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주황빛 알과 노란빛의 내장이 맛깔나 보인다. 검정과 흰 바탕에 주황과 노랑 그리고 실파의 녹색이 포인트로 들어갔다. 게장이 뭔 맛인지도 모르는 놈 입에서 절로 감탄사가 튀어 나왔다. 게의 크기도 적절하다. 게를 자주 먹지 않아 잘은 모르지만 사람들 말로는 화해당의 게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딱 적당한 크기의 게라고 하더라.
게딱지에도 알과 내장이 가득하다.
역시 간장게장은 게딱지가 최고.
아내는 눈 앞의 게장을 맛볼 생각에 신이났다. 나도 첫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뒤로하고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한 입. 오 비린 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동안 숟가락 끝에 살짝 간장만 찍어도 느껴지던 비린맛이 게를 한입 쪽 빨아 먹었는데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내는 '거봐~ 내가 하나도 안비리다고 했지?'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 봤다.
이후부터는 그저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짜지않고 적당히 단맛이 느껴지는 간장은 밥에 비벼먹기 좋았다. 개인적으로는 밥과 게장을 김에 얹어 싸 먹는게 가장 입맛에 맞더라. 아주 미세한 비린맛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요정도는 게장의 담백함과 짠 맛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간장게장 정식 2인을 시키면 암게 두 마래가 나온다.
적은 양인 것 같지만 우리 둘이 먹기에는 적당했다.
간장게장의 백미는 바로 게딱지에 밥을 넣고 쓱쓱 비벼 먹는 것이란다. 게딱지 안쪽에 숨어있는 내장과 알을 구석구석 긁어내어 밥을 게딱지에 턱하고 올린 뒤 쓱쓱 비벼 먹어보니 그 맛이 참 좋더라. 내가 게장을 언제 싫어했었나 싶을 정도로 싹싹 긁어 먹었다.
간장게장의 화룡정점은 바로 게딱지에 비벼 먹는 밥이다.
게장을 못 먹었던 나조차 이 맛에 반해버렸다.
개인적으로는 게딱지에 비빈 밥을 김에 싸 먹는 것이 가장 맛있었다.
게딱지에 올려 비빈 그 맛에 반해 게의 살을 비벼 먹고자 밥위에 몇개를 쭈욱 짜냈다. 그리고 비볐는데 이 날 처음으로 비린 맛을 느꼈다.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분명 비렸다. 게의 살은 비비지 말고 그냥 올려 먹어야 비리지 않다는 것을 이때야 깨달았다. 내장과 알은 고소한 맛이 강해 밥과 비벼 먹거 좋았지만 하얀 살을 뜨뜻한 밥에 비볐더니 비린 맛이 올라왔다.
몸통 살을 짜내 밥에 올려 비볐다.
몸통의 흰살은 비벼 먹기보다 숟가락에 올려 먹는 편이 나을 듯.
뜨뜻한 밥에 비빈 흰살은 비린 맛을 낸다.
게장과 밥을 다 목은 후 밥을 퍼낸 뚝배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 불려두었던 누룽지를 먹으며 식사를 마무리했다. 먼 거리를 달려 온 것이 아깝지 않았던 한끼 식사였다.
정갈하고 깔끔한 인테리어와 식기, 그리고 맛있는 돌솥밥과 간장게장에 한끼 잘 대접 받고 나오는 느낌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자 이미 오늘 준비한 간장게장이 동이났다고 '매진'이라는 표지가 입구에 세워져 있었다. 알고보니 우리가 거의 마지막으로 입장했었던 것. 멀리서 왔는데 다행히 운 좋게 화해당의 간장게장을 맛보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 준비한 간장게장이 동이나면 더이상 손님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매진될 수 있으니 부지런히 서둘러 가야한다.
화해당은 게장의 게자도 모르던 내게 그 맛을 일깨워 준 간장 게장 맛집이다. 그 맛이 담백하고 부드러워 맛있게 먹고 왔다. 가장 걱정했던 비린맛도 거의 없어 부담스럽지 않았다. 왜 방송에 나오고, 긴시간 기다려가며 그 맛을 보러 사람들이 찾아 오는지 이번 방문을 통해 게장 초보인 나로서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화해당의 본점은 태안에 있다. 태안 본점을 찾아가려면 오랜 시간을 이동해야하니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그런데 화해당이 서울에도 있다. 여의도에 화해당 지점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홈페이지와 전화를 통해 배송 주문까지 받는다. 굳이 본점을 찾지 않아도 화해당 게장의 담백한 맛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한번쯤은 태안 본점을 직접 방문해 보는 것도 좋겠지만 여의도점을 찾아 그 맛을 보거나, 배송 주문을 통해 집에서 편하게 게장을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출처: http://insahara.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