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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년 손맛, 초가집칼국수

동절기가 찾아왔다. 옷깃을 자꾸 여미며 뜨끈뜨끈한 국물이 그리워지는 계절. 국수 한 그릇 말아 언 몸을 녹이고 싶을 때다. 같은 국수여도 더 맛있는 집을 찾으려면 어디가 좋을까. 반백년이 넘게 국수집과 함께 세월을 보내고 있는 할머니 이야기이다. 


초가집에서 4층 건물이 서기까지

“처음에 이 집터 일대는 다 흙이었어요. 지금으로부터 58년 전 우리집도 마찬가지였죠. 흙바닥에서 국수를 밀고, 끓이고... ... . 그렇게 지낸 세월이 한 해 두 해 가더니 이렇게 나도 늙어버렸네요.”



58년째 국수를 끓이는 신경현 할머니



초가집칼국수 집 주인 신경현(81) 할머니. 신 할머니가 국수를 처음 배운 것은 그의 시어머니로부터이다. 시모는 충북 조치원이 고향이자, 조선일보 편집까지 보던 남편이 세상을 달리하자, 국수집을 인천 중구 용동 길모퉁이에 차렸다.

신 할머니는 당시 시모로부터 약 1년간 국수를 배운 게 지금의 초가집 칼국수 맛. 시모는 그 후 돌아가셨고, 신 할머니 남편마저 시모의 뒤를 따랐다. 이래저래 홀로 남게 된 신 할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국수뿐이었다.





국수를 만들며 알게 된 김복순(58)씨는 그의 직원이자 30년 지기 국수 동반자. 두 사람의 솜씨가 초가집 칼국수를 좌우한다. 지금이야 손님이 줄어 한가하지만, 중구가 번창하던 그 시절에는 골목 너머까지 칼국수 먹으러 온 손님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58년 전 시어머니가 전해준 맛

손님은 줄고 거리는 해가 갈수록 썰렁해지지만, 초가집 신 할머니 칼국수 맛은 여전히 남아 추억을 더듬는 식객을 반긴다. 이곳 칼국수는 호사스런 꾸미가 없다. 그렇다고 먹었을 때 입에 쩍 달라붙는 요란한 묘미도 더더욱 없다.

“바지락이죠. 다른 것을 넣고 해본 적이 없어요. 바지락으로 칼국수를 하면 맛이 개운하고 구수해요. 반죽도 콩가루만 섞어서 손으로 밀어요. 먹어본 손님들이 한결같이 고향 할머니가 시골에서 끓여주던 그 맛이라고들 해요.”






신 할머니가 20Kg에 7만원을 호가하는 바지락을 고집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시모가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배운 국수라서 오랜 세월을 버텨왔는지도 모른다. 칼국수와 함께 주 메뉴인 이북식 만두는 신 할머니의 해방 전 만주 생활에서 배워온 독특한 맛이라고 한다.

“지금은 가스로 하지만, 당시는 연탄에 풀무지를 해가며 끓였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미어지고, 정말 손님이 많았죠. 초가집이 기와집으로, 기와집이 지금의 4층을 올릴만큼 돈도 벌었죠.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달라졌어요. 연탄으로 난방을 할 정도로 손님이 줄어가요.”





세월 따라 사라져 가는 그 옛날 전성기

인천시 중구 용동 겨울은 더 을씨년스럽다. 북적이던 그 옛날이 그리워서일까. 용동 골목들이 차츰 비어가고 있다. 신 할머니의 초가집이 이곳에서 처음 칼국수를 시작하자, 칼국수집들이 여기저기 생겨나던 시절이 다시 안 올 것 같다고.

“용동 큰우물 근처에는 우리 초가집 말고도 새집칼국수, 큰우물칼국수, 지금은 문을 닫고 이사 가버린 황고집칼국수집들이 함께 국수 손님을 맞았어요. 그러던 중구가 왜 이렇게 쓸쓸해졌는지 정말 알 수가 없어요.”


시모가 물려준 도마


신 할머니는 국수 먹으러 오는 손님이 준 것도 속상하지만, 거리 일대가 텅텅 비어가는 게 더 안쓰럽고 한탄마저 나온다. 먹거리가 좋아져서 손님들이 화려하고 진한 음식을 찾겠지만, 소박하고 소탈하며, 먹어도 물리는 법이 없는 국수는 음식이자 추억인데 말이다. 

그래도 신 할머니는 다리가 더 아프기 전까지는 국수를 할 작정이다. 초가집 국수는 가격조차 옛날 그대로, 돈통도, 주방도 모두 그대로라 더 정겹다. 찾아가는 길은 동인천 길병원과 기독병원 사이 골목길 모퉁이다.

문의 : 032-773-5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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