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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음식 떡볶이
14-10-07 18:01

곡식을 이용한 음식의 역사는 우리가 생각하기보다 길다. 가장 기본적인 음식인 곡식을 이렇게 저렇게 다양하게 조리하다가 여러가지 먹을만한 것이 나오는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밥, , , 밀쌈 등의 음식은 짧지 않은 역사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떡의 역사는 단군조선 시대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곰이 마늘과 쑥을 억지로 참아가며 먹을 때, 호랑이는 산기슭을 돌아다니면서 지나가는 아줌마에게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협박하며 삥을 뜯었다고 한다.
 
농담이다. -_ 하지만 청동기 시대의 유물로 돌확 등과 함께 시루가 출토되고 있다. 그 시루로 떡을 쪄먹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곡식을 쪄서 먹었는지는 알 수 없다만, 떡의 역사를 삼국시대 이전으로 올려잡는 것은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삼국시대 이후부터 떡에 관한 이야기들이 역사 기록에 자주 등장한다. 소위 "이빨이 많은 사람이 지혜가 많다하니 우리 떡을 깨물어서 이빨의 갯수를 세어보자" 라는 이사금에 관한 기록부터, 백결선생이 날궁상을 떨어가며 뜯어댄 방아소리등등.
 
떡볶이의 재료가 되는 가래떡 또한 그 역사가 짧지 않다. 가장 기본적인 재료를 가장 기본적인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떡의 초기 역사에서부터 이미 등장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한석봉네 어머니-_가 썰기도 했을테고. 그리고 조랭이떡은 개성의 향토음식인데, 고려인의 한을 풀기 위해 이성계 모가지 대신에 떡 모가지를 조르다가 지금의 그 모양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흰떡에 대한 명확한 기사는 동국세시기가 되어야 한다. 동국세시기에는 떡을 돈같이 썰어 국을 끓여먹는다는 기사가 있다.
 
궁중 떡볶이
 
친절한 장금이 덕택에 잘 알려져있다시피 옛날에 먹어왔던 궁중떡볶이는 지금의 떡볶이와는 조금 다르다. 간장양념에 쇠고기를 볶아넣고 함께 삶는 형태의 음식인데, 떡을 떡국 사이즈로 썬 것이 아니라 큼직하고 두껍게 썰었다고 한다. 떡볶이보다 떡찜이 더 옛날식에 가까운 표현이라는 말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간장맛이 좋은 파평윤씨 가문의 종가 대표 음식 가운데 하나라고 알려져있는데, 17세기에 파평윤씨에서 처음 개발하고 이후 양반가문 위주로 보급되었다고 한다.
 
요즘의 가래떡은 떡을 찧은 뒤 기계로 뽑아내지만, 옛날의 가래떡은 손으로 일일히 밀어서 둥근 모양을 만들어야 했다. 떡 자체가 곡식을 헤프게 먹을 뿐만 아니라, 떡을 만드는 과정 자체도 손이 많이 갔을 것이다. 떡 자체도 귀한데다가 쇠고기까지 들어갔으니 일반 민가에서 먹기 쉬운 음식일리가 없다. 간식이 아닌 명절음식으로 오랜 세월을 이어갔을 것이다.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
 
우리가 생각하는 떡볶이의 시작은 언제일까. 검색해보면 곧 마복림 할머니(1920년쯤 태생)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마복림 할머니네 회사-_의 홈페이지( www.마복림신당동떡볶이.com) 에 나온 내용은 이렇다.
 
떡볶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기 위해서는 6.25 전쟁 직후인 195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6.25전쟁이 끝난 후 1953, 3년 동안의 피난살이로 너나 할것없이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 마복림 할머니는 집안의 귀한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중국 음식점을 찾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맛있게 먹는 식구들을 보고있자니 또다시 언제 맛볼지 모르는 요리에 쉽게 손을 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중 가장 만만해 보이는 개업식 공짜떡을 먹기로 하고 떡을 집다가 친정아버지가 드시던 자장면 그릇에 떡을 빠뜨리게 됐습니다. 자장면 양념이 묻은 떡을 드시고 생각보다 맛이 좋아 고추장을 생각하게 되셨고 그날의 실수로 우리나라 간식 문화를 바꿔놓을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된 것입니다.
 
마복림 할머니의 떡볶이는 춘장과 고추장이 적당히 섞여있는 비율이라고 한다. 그리고 신당동 떡볶이는 사실 떡볶이라고 부르기에 민망하다. 신당동 떡볶이에 들어있는 떡 숫자는 붕어빵에 들어있는 붕어 숫자하고나 비슷할까. 라면, 쫄면, 계란, 만두 등등 갖은 잡동사니들이 다 들어가서, 이미 떡볶이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_ 짜장면에서 힌트를 얻어서 진화한 음식이라면 떡볶이 또한 초기에는 짜장면과 비슷한 모양 아니었을까 싶기는 한데, 당사자가 살아있으니 가서 물어봐도 될 문제인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떡볶이의 탄생은 당사자가 기억하는 1953년일 것이다  
 
<아놔 떡 어딨어  
 
하지만 이 떡볶이의 원년이 1953년이라고 해서 서민적 전통이 된 것이 그 해는 아니다. 1960 년 경의 신문기사에 등장하는 떡볶이는 간장양념 그대로의 궁중떡볶이의 모습이다. 1970년 경 신당동 떡볶이집에 DJ가 들어오고 라디오에 소개됨으로써 떡볶이가 비로소 크게 각광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까지의 떡볶이는 노점형, 분식점형 떡볶이가 아닌 신당동의 향토음식-_ 이었을 것이라고 판단이 된다. 고추장이 흥건한 현재의 떡볶이는 신당동 떡볶이가 조금 더 인스턴트화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연대는 1960년대 후반 또는 1970년대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고추장 범벅이 된 새빨간 음식의 대명사인 떡볶이는 1970년대 이전까지는 간장양념의 까만 음식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에는 아마도 고추장이 새빨갛게 번진 음식을 <한국인의 매운맛>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기 어려운 시대였을 것 같다.
 
한편 떡볶이의 굵기가 가래떡 사이즈에서 지금의 손가락굵기 싸이즈로 바뀌는 시점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없다. 여러 사람의 기억에 의존해보았을 때, 이것은 고추장 떡볶이의 유행과 비슷한 시점인 60년대 후반 내지는 70년대 초반 정도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이때의 떡은 지금과 같은 쌀떡이 아니고, 밀가루 함량이 50%도 넘는 혼합떡이었다.
 
이렇게 현대에 개발된 음식이므로, 북한에서는 한국과 같은 떡볶이가 없다. 2000년 이후 수입된 떡볶이는 금강산 부근이나 개성공단, 평양 등지에서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여담으로. 정재환이 주장하는 짜장면이 자장면이 되는 쓰레기같은 국어순화법칙에 의하면 떡도 <>이 되어야겠군. 떡볶이는 <덕복이>이 가 되나? 이거 그러고보니 서명운동이라도 한 번 모집해볼까? -_
 
짤방은 1960년의 집에서 손쉽게 떡볶이 요리법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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