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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밥이 한때 최악의 음식으로 취급됐던 까닭은?
14-12-21 11:59

콩밥은 영양도 만점에 맛도 좋다. 그래서 콩밥을 좋아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콩밥에 대한 우리말 이미지만큼은 최악이다. “콩밥 먹는다”는 말은 죄를 짓고 감옥에 갔다는 말과 동의어로 쓰일 정도다. 왜 이런 말이 생겼을까?

 유방(劉邦)과 천하를 놓고 다투던 초한지의 영웅 항우(項羽)가 대장군이 된 것도 콩밥이 계기가 됐다. 부하들에게 콩밥을 먹일 수 없다는 것이 거사 명분이었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한나라 정사를 다룬 역사책, 한서(漢書) 열전에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 있다.

 기원전 3세기, 진시황이 죽자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진나라가 제후국 조나라를 공격하자 초나라가 조를 돕는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초군의 총사령관은 송의(宋義), 부사령관은 항우였다.

진과 조가 거록이라는 곳에서 대치하고 싸우는데 송의가 이끄는 초나라 군대는 부근의 안양에 도착한 후 그곳에서 46일 동안을 주둔하며 더 이상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하루속히 진나라를 공격해 곤경에 처한 연합국 조나라를 돕자는 항우의 주장과 달리 송의는 진나라와 조나라가 싸우다 지쳤을 때 진을 공격하면 손쉽게 승리를 거둘 수 있다며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전쟁의 목표와 전략적 승리를 떠나 오직 전투의 승리만을 목표로 삼았던 것이다.

 항우가 반발했다. “폭군의 손에서 천하를 구하고 안정시키려 군대를 일으켰는데 진나라를 공격하기는커녕 한곳에 머물며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지금은 나라는 황폐하고 백성은 굶주렸으며 병사들도 군량미가 다 떨어져 겨우 콩밥을 먹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송의는 연회나 베풀어 손님을 맞고 있을 뿐 콩밥 먹는 배고픈 병사의 사기는 헤아리지 않고 있다.” 항우가 이런 주장과 함께 송의를 죽이고 자신이 사령관이 돼 진나라를 공격했다.

 병사들이 있는 힘을 다해 싸웠는데 이유가 두 가지로 첫째는 파부침선(破釜沈船)이다. 출전에 앞서 솥을 깨 버리고 타고 온 배는 구멍을 내 가라앉혔다. 싸우다 죽거나 아니면 승리하겠다는 임전무퇴의 결의였다. 또 하나는 콩밥이다. 부하들에게 콩밥을 먹일 수 없다는 항우의 말에 병사들이 감격했고 사기는 치솟았다. 결국 전투는 대승을 거뒀고 항우는 대장군이 돼 천하의 영웅이 됐는데 이 싸움이 유명한 거록(鋸鹿) 전투다.

 항우는 왜 병사들에게 콩밥을 먹일 수 없다며 콩밥을 사기의 명분으로 삼았으며, 병사들은 왜 이에 호응해 항우를 따랐을까?

 지금은 콩이 쌀보다 훨씬 비싸니까 콩밥이 영양식이지만 옛날에는 전혀 달랐다. 콩이 너무 흔했기 때문에 감옥에서는 콩밥을 먹였는데 일부에서는 먹는 것이 자유롭지 못한 재소자들의 영양 상태도 고려하고 또 콩 값이 쌀보다 쌌으니까 콩밥을 제공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감옥이라는 곳이 그렇게 인간미 넘치는 곳이 아니다.

 우리나라 교도소에서 콩밥이 사라진 것이 1996년 이후다. 지금은 쌀 90%, 보리 10%의 잡곡밥을 배급하는데 그나마 최근 규정이 바뀌어 앞으로 100% 쌀밥을 급식한다. 보리 값이 쌀값보다 훨씬 비싸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콩밥 먹는다”는 말 대신 “쌀밥 먹는다”는 말이 감옥에 간다는 뜻으로 쓰이게 생겼다.

 실제로 콩밥을 보면 평생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을 정도다. 1957년 교도소 급식규정이 만들어졌는데 이때 재소자들에게 쌀 30%, 보리 50%, 콩 20%가 섞인 잡곡밥을 배식했다. 콩이 20%라면 비중이 별로 높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 밥을 지어보면 쌀이나 보리보다 콩이 훨씬 많아 보인다. 한두 끼는 몰라도 콩밥에 질릴 정도다.

 일제 강점기 때는 더 했다. 1936년의 급식규정은 쌀 10%, 콩 40% 좁쌀 50%였다. 이 정도면 콩밥이 아니라 콩 덩어리에 쌀과 좁쌀 몇 톨 붙어 있는 수준이다. 아무리 배가 고프더라도 하루 세 끼, 일 년 365일을 계속 이런 콩밥을 먹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얼마나 싫었으면 “콩밥 먹는다”는 말이 다 생겼을까 싶은데 콩밥이 어떤 식사였는지는 1936년도 신문에 실린 동시(童詩)에서 짐작할 수 있다.

 “콩밥을 보면 넌더리가 나요. 우리 집은 매일 콩밥만 짓지요. ‘엄마, 나 콩밥 먹기 싫어, 쌀밥 지어, 응’하고 졸랐더니 엄마는 ‘없는 집 자식이 쌀밥이 뭐냐. 어서 먹지 못하겠니’라며 부지깽이를 들고 나오셨다. 나는 꿈쩍도 못하고 안 넘어가는 콩밥을 억지로 넘겼지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콩밥에 대한 반응이 이 정도였으니 항우가 더 이상 부하들이 콩밥(豆飯)을 먹으며 싸우는 것을 볼 수 없다고 송의에게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지엽적인 전투의 승리도 중요하지만 진나라의 폭정을 끝내고 천하를 안정시킨다는 전쟁의 목적, 그리고 감옥에서나 먹는 콩 덩어리를 먹어야 하는 부하의 사기도 중요하다는 것이 항우의 생각이었다. 흔히 힘만 세다고 알려졌지만 초패왕(楚覇王)으로 영웅 대접을 받았던 것에는 나름의 리더십이 있었다.            <윤덕노 음식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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