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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먹고 100일을 견디는 신선의 음식” 미숫가루
14-12-21 11:16

신라 화랑, 심신을 단련하며 미숫가루 먹어
수련자 양식에서 전쟁 때는 전투식량으로… 
선식(禪食)이란 도 닦는 사람들이 몸과 마음을 수련하며 먹는 음식이다. 간편하면서 영양까지 풍부한 자연 건강식이기 때문이다. 신라 화랑들이 전국 명산과 사찰을 찾아다니며 심신을 단련할 때 선식을 먹었는데 거창한 음식이 아니라 대부분 미숫가루를 먹었다. 화랑들이 전쟁터에서 적과 맞서 싸울 때 먹었던 것도 미숫가루다. “적국이 큰 멧돼지처럼 우리 국토를 침범했을 때, 씩씩한 우리 화랑들은 창 메고 길 나서 처자와 이별한 후 샘물에 미숫가루 마시며 나라를 위해 몸바쳤네.” ‘동문선’에 실린 시인데 화랑들은 왜 미숫가루를 먹으며 몸과 마음을 연마하고 전투에 나섰을까?

 선식은 신선들이 먹었던 음식이기에 선식(仙食)이라고도 한다. 옛날 사람들은 신선들이 구름이 짙게 드리워진 깊은 산 속에 살면서 유유자적, 늙지도 않고 세월을 낚으며 살았는데 이들이 먹는 선식이 바로 미숫가루였다고 믿었다. 신선은 왜 미숫가루를 마시며 보양을 했을까?

 ‘산림경제’에 신선이 먹는다는 천금초 만드는 법이 나오는데 미숫가루와 다름없다. 메밀가루에다 꿀, 참기름, 감초를 섞어 덩어리로 만든 후 푹 쪘다가 그늘에 말려서 다시 가루로 만든다고 했는데 한 숟가락씩 냉수에 타서 마시면 100일 지나도 배가 고프지 않고, 비단주머니에 담아 놓으면 10년이 넘도록 보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를 닦아 수양하는 사람들이 먹는 선식이건, 혹은 구름을 타고 노니는 신선들이 먹는 음식이어서 선식이건, 선식의 기본조건은 위에 부담을 주지 않고 머리를 맑게 해 주는 음식이어야 한다. 화랑이나 신선이 미숫가루를 선식으로 삼은 이유 역시, 먹어도 포만감은 없지만 긴 시간 동안 배가 든든해서 몸이 가볍고 배는 고프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미숫가루를 한 번 실컷 먹으면 7일 동안 밥을 먹지 않아도 되고, 두 번 실컷 먹으면 49일을 버틸 수 있으며, 세 번 실컷 먹으면 100일간 시장기를 느끼지 않고 네 번 실컷 먹으면 영원히 배가 고프지 않은데 그래도 얼굴이 좋아지고 다시 초췌해지지 않는다고 했다.

 속된 말로 조상님들의 ‘구라’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어쨌든 적은 양의 미숫가루로도 체력 유지가 가능한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고 예전에는 신선과 구도자들의 음식으로, 또 전쟁이 일어나면 피란민들이나 군인들이 무엇보다 먼저 준비했던 전시식량이었다.

 조선 초, 세조 때는 북쪽 오랑캐들이 압록강을 넘어 의주 땅으로 자주 쳐들어왔다. 세조가 국경을 지키는 장졸들에게 국경수비를 한층 강화하라고 지시하면서 병력을 정비하는 한편으로 미숫가루와 군마에게 먹일 마른 풀을 잘 살펴 준비하라고 당부하는 대목이 세조실록에 보인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지만 한번 혼이 났으니 그만큼 대비를 하는 것이 인간 본연의 심리다. 하지만, 지나친 준비는 오히려 화를 부를 수도 있다.

 광해군 때 전라도를 지키는 병마절도사가 유승서 장군이었다. 당시 전라 병마절도감영은 지금의 전남 강진에 본부를 두고 있었는데, 강진은 임진왜란 때 전화에 심하게 휩싸였던 지역이다.

 광해군 3년인 서기 1611년은 임진왜란에 이어 왜군이 다시 쳐들어왔던 정유재란이 끝난 지 약 10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은 때였다. 전쟁 때 겪었던 공포가 백성들 마음속에 그대로 살아 있었기에 전쟁이 다시 일어난다는 소문이 흉흉하게 나돌았다.

 이 해에도 왜군이 다시 쳐들어올 것이라는 소문이 쫙 퍼졌다. 이때 전라 병마절도사 유승서가 산하 각 병영으로 공문을 내려보내 병졸과 군역들에게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 여기에 대비해, 각자가 미숫가루와 짚신을 준비해 두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전라도 일대가 공포에 휩싸였다. 바로 전쟁이 일어난다는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전라 병마절도사 영문에 전쟁에 대비해 미숫가루를 준비하라는 공문이 내려졌는데 그것이 증거라는 것이다. 백성은 곧 난리가 다시 날 것인데 농사는 지어 무엇할 것이냐며 일은 하지 않고 먹고 마시며 세월을 보냈다. 사람들은 만약에 대비해 피란 보따리를 미리 꾸려 놓았고, 소문이 조금 더 흉흉해지면 노인과 아이를 데리고 피란 떠날 궁리만 하는 등 전라도 일대에 큰 혼란이 일어났다.

 혼란스러운 상황이 조정에 보고되면서 사간원에서 병마절도사 유승서를 탄핵했다. 장수인 자가 비록 적이 국경을 넘어 쳐들어오고 있다 해도 의연하게 동요하지 않고 군사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데 힘을 쏟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병사를 훈련시켜 전쟁에 대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급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미숫가루와 짚신을 준비하라는 쓸데없는 명령을 내려 민심을 동요시키고 사회를 혼란에 빠트릴 정도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탄핵의 사유였다.

 손자병법에도 “군대가 서두르는 것은 이익이 될 수도 있고, 위험이 될 수도 있다.(軍爭爲利, 軍爭爲危)”고 했다. 대비는 중요하지만 지나치면 위험할 수 있다. 사소한 것 하나도 소홀히 하면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윤덕노 음식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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