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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김치 예찬 천년의 정이 깃든 김치
15-03-29 08:11

조선김치 예찬
이 글은 식민지시기였던 1928년 5월 1일에 간행된 잡지『별건곤』제12·13호에 류 춘섭이 썼다. 글 제목은「조선김치예찬」이다. 비록 지금으로부터 80여 년 전에 쓰 인 글이지만, 김치를 두고 이렇게 명확하게 쓴 글도 드물다. 특히 고기를 매일같이 먹으면 물리지만, 김치는 그렇지 않다는 대목에서는 손뼉도 쳐주고 싶다. 더욱이 ‘밥과 함께 먹을수록 정이 더 붙는다’는 말은 한국인에게 김치가 어떤 음식인지를 분명하게 해준다.

그렇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김치는 밥을 먹을때필요한 반찬이다. 특히 모락모락 김이 솟아오르는 흰 쌀밥에 잘 익은 배추김치 한 조각을 올려놓고 후후 불면서 입안에 넣으면 그 씹히는 아삭아삭한 느낌과 쌀밥에서 나오는 구수한 단맛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또 구운 삼겹살을 상추에 올려놓고 약간 신맛이 나는 김치를 그 위에 포개어 입 안에 가득 넣으면 그 감칠맛이 고기 맛을 더욱 좋게 만들 어준다. 어디 이뿐인가! 비빔국수에 김치 조각을 넣어도 그 맛은 일품이다. 심지어 찐 고구마에 파란 색의 배추김치 이파리를 얹어서 함께 먹으면서 동치미 국물로 마른 목을 축이면 입 속은 환상 그 자체가 된다.

이렇듯이 김치는 한국인이 탄수화물을 먹을 때 언제나 함께 먹고 싶어 하는 반찬이 다. 그러니 김치의 역사를 따질 때도 곡물로 지은 밥을 주식으로 먹기 시작한 때를 추정해 볼 필요가 있다. 삼국시대만 해도 일부 귀족들을 빼고 나면, 고구려 사람들 은 주로 좁쌀밥을, 신라 사람들은 보리밥을, 그리고 백제 사람들 중 일부가 겨우 쌀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어떤 곡물에 비해서도 먹기 편하고 맛 이 좋은 쌀밥을 많이 먹기 위해 왕실이나 백성이나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본래 아열대지역에서 잘 자라던 벼가 고려시대에는 한반도의 남부는 물론이고 중 부와 북부에서도 재배가 가능하게 되었다.



고려시대 김치의 모습

이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고려중기의 대문장가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다음과 같은 시를 그의 책『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적어두었다.‘ 장에 담그면 여름 3개 월 동안 먹기에 매우 마땅하고, 소금에 절이면 겨울 9개월을 능히 견딜 수 있네.

뿌 리는 땅 밑에 휘감겨서 약간 통통한데, 서리가 내릴 때 칼로 자르면 그 모양이 배(梨) 와 비슷하네.’본래 이 시의 제목은「청菁」이다. 청은 순무를 가리킨다. 한문으로 된 이규보의 시에서 절인다는 의미로 쓴 한자는‘지漬’이다.

이‘지’는 물에 담근다는 뜻과 함께 소금물에 절인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시경詩經』에서는 채소를 다듬어서 절인 음식을‘저菹’라고 적었다. 실제로 소금에 절인‘저’와 식초에 절인‘저’, 심지어 채소만 아니 라 고기를 그렇게 절인 음식도‘저’라고 적었다.

그런 탓에 이규보는 단지‘지염漬鹽’이라고 적었 지, 그것을 곧장‘저’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규보보다 거의 150년 뒤에 살았던 이색(李穡, 1328~1396)은 ‘개성사람 유순이 우엉, 파, 무로 담근 침채장沈菜醬을 보내 왔다’는 제목을 붙인 한시를 남겼다. 여 기에서‘침채장’은 요새 말로 하면 장김치이다.

장김치란 무, 배추, 오이 등의 채소를 간장에 하루 쯤 절인 후 그것을 그릇에 담고 간장과 물로 국물을 만들어 담근다. 이로부터 김치는‘침채’라는 이름으로 널리 불려졌다. 조선 세조 때의 어의御醫였던 전순의(全循義, ?~?)는『산가요록山家要錄』이란 책에서‘청침채菁沈菜’만드는 법을 적어두었다. 무를 재료로 하지만 들어가는 양념이 없이 오로지 소금물로 맛을 낼 뿐이었다.

다만 항아리의 국물에 거품이 생기거나 넘치면 매일 걷어내고 소금물 을 타서 조금씩 부어 주면 좋다고 했다. 사실 당시의 침채는 지금의 김치와 달랐다. 채소를 소금물 에 절여서 국물이 흥건한 것을 침채라고 불렀다. 이렇듯이 적어도 조선중기까지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은 밥을 먹으면 짠지, 장아찌, 침채를 반찬으로 먹었다.



양념 김치의 등장

그런데 1592년에 일어난 불행한 전쟁인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고추가 한반도에 들어왔고, 그것이 17세기 이후 침채에 들어갔다. 1766년 유중림(柳重臨, ???)은『산림경제山林經濟』를 증보하여 편찬한 필사본『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라는 책에서 침채를‘저’라고 하면서 고춧가루가 들어간 양념김치의 조리법을 적어두었다.‘ 첫서리 뒤에 무와 잎을 거두어서 깨끗하게 씻는다.

이와 별도로 고추의 연한 열매와 줄기와잎, 청각, 늙지 않은 오이, 어린 아이의 주먹만한호박과잎밑의 연한 줄기, 가을 갓의 줄기와 잎, 동아, 천초川椒, 부추 따위를 가져다가 함께 담근다. 그리고 마늘을 많이 갈아 즙을 내고 무와 여러 가지 양념들과 버무려서 항아리에 넣을 때에 한 겹 한 겹 띄워 마늘 즙을 골고루 넣는다.

항아리를 단단히 싸매어 땅에 파묻는데 앞에 서 말한 대로 하면 된다. 섣달에 꺼내어 먹으면 맛이 기가 막힌다. 다만 공기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하면 봄까지도 먹을 수 있다. 또 미나리 줄기와 애가지를 함께 담가 도 맛있다.’

18세기 중반 비로소 양념이 들어간 김치가 발명되었다. 정약용 선생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丁學游, 1786~1855)는 1819년경에 지은「농가월령가」라는 글에서 음력 시월이면 김장을 해야 한다고 읊조렸다.

‘ 시월은 맹동孟冬이라, 입동立冬소설小雪절기로다. 나 뭇잎 떨어지고, 고니 소리 높이 난다. 듣거라 아이들아, 농공農功(농삿일)을 필하여도, 남은 일 생각하야, 집안일마저〔남김없이 모두〕하세. 무·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내(냇물)에 정히 씻어, 함담鹹淡(짜고 싱겁고)을 맞게 하고, 고추·마늘·생 강·파에, 젓국지 장아찌라. 독 곁에 중두리요, 바탕이 항아리라. 양지에 가가假家 (김치광)를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 박이(호박), 무, 알암말(잘 익은 밤)도 얼잖게(얼지 않게) 간수하소.’조선후기에 들어오면 쌀은 단순한 곡물에서 세금을 내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물품이 되었다.

당연히 쌀을 많이 생산하기 위한 노력이 농사 의 개선을 가져왔다. 이때 쌀밥을 맛있게 먹기 위해 김치에는 온갖 양념이 들어가 기 시작했다. 생선을 절인 젓갈은 단백질을 김치에 보태주었다. 빨간색의 고춧가루 는 쉽게 쉬지 않도록 하는 방부제로도 효과가 탁월했다. 10가지가 넘는 재료가 양념 으로 쓰이면서 땅 속에는 익는 김치가 발효 미학의 절정을 이루었다.



김장과 김치, 가장 오래된 한국의 문화 유산

20세기에 들어오면서 매년 겨울 초입이 되면 한반도의 집집마다 김장을 하였다. 이 김장은 집안의 큰 행사이면서 동시에 큰 걱정거리이기도 했다.

재료를 확보하는 데 돈이 만만치 않게 들었기 때문이다. 주부들은 이 걱정을 해결하기 위해 배추나 무 말고도 여러 가지 재료로 김치를 담갔다.

김장을 한 이후 날이 갈수록 익다가 마침 내 시어버리는 김치. 하지만 한반도에서 살았던 사람들은 적어도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김장을 사라지게 하지 않았다. 이 김장김치는 갓 태어난 아이부터 병환에 든 할아버지까지 밥을 먹을 때 빠트리지 않는 반찬이다.

그래서 한 집안의 입맛도 이 김장김치의 조리법으로 결정되었다. 21세기 초입인 오늘날, 비록 그 양은 30년 전과 비교가 되지도 않지만, 식구들의 오래된 입맛에 맞춘 김장김치가‘가가’가 아닌‘김치냉장고’에서 익고 있다. 아마도 김치와 김장은 한국어와 함께 한국인에게 가장 친근한 문화유산일 것이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 문화재 전문위원) 사진. 두피디아 포토박스, 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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