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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향 문화의 시작 마음을 담은 그릇 향로
15-03-29 10:55

우리나라 향 문화의 시작
우리나라의 향 문화를 엿 볼 수 있는 예로는 우선 삼국시대 고구려 쌍영총雙楹塚 고분벽화古墳壁畵 행렬도行列圖에 등장하는 머리에 향로를 이고 있는 인물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신라 성덕대왕聖德大王 신종神鐘에 연꽃 형태의 향로를 들고 있는 비천상飛天像과 경주 단석산斷石山 마애상磨崖像에 청동 향로를 든 향공양상香供養像은 신라시대 향문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또한 안압지雁鴨池에서 발견된 납석臘石으로 된 향로 뚜껑은 신라에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향로가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게 한다. 삼국시대 4세기 후반 불교가 전래된 후 범종梵鐘과 사리기舍利器 등 불교 공예품 제작이 이루어지면서 불교공양구로 향로가 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부여扶餘 능산리陵山里 절터에서 금동용봉향로金銅龍鳳香爐가 발견되었고 미륵사지彌勒寺址에서 금동향로金銅香爐가 출토되어 이는 당시 향문화가 사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음을 추측하게 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향 문화
중국에서는 옛날부터 ‘개문칠건사開門七件事’라는 말이 있었는데 송대(960-1279)에는 ‘개문팔건사開門八件事’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여덟 번째 일이란 바로 향을 피우는 것을 말한다. 향을 피우는 것은 송대 선비들에게 있어서 일종의 삶을 즐기는 방법으로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으며 거의 중독될 정도로 일상생활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였다. 사대부나 문인의 생활에서 향은 필수적인 기호품으로 달빛 아래서 침향을 태우거나 심지어는 낮잠을 청할 때도 향을 피웠다. 향로에 침수향沈水香을 태우며 흩날리는 향 연기를 따라 마음과 몸을 맡기며 시를 짓는 것, 그리고 가랑비에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황혼 중에 침향을 피우는 것 등은 송인宋人의 생활 중 일종의 특별한 풍류였다. 회화 작품을 통해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고려는 송나라 사대부 사회에서 유행하였던 향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고려의 문인 이규보李奎報는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당시의 향 문화를 비롯하여 귀족 사회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내용의 글을 많이 남겼다. 시 구절 내용 중에는 절에 보이는 향로와 분향, 쓸쓸한 암자에 향로가 놓인 한적한 풍경을 읊은 구절이 있다. 시운詩韻을 따라 지은 시의 내용에는 술 대신 돌솥에 차를 달여 마시며 편안함을 즐기는 가운데, 향로에서는 향 연기가 피어나고 사람이 귤을 먹고 있는 풍경을 묘사한 것도 있다. 술자리에서 침향沈香 연기에 노래하는 목청이 메인다는 내용도 볼 수 있다. 고려시기에 이르면 왕실의 불교행사나 국가적인 제례에 향을 피웠으며, 향을 약재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왕은 신하들에게 향을 선물하기도 하여 귀족들 사이에서도 향에 대한 관심이 점차 확대되었다. 송나라가 특별히 사신을 통해 선물로 침향沈香을 보냈다는 『고려사高麗史』의 기록과 고려 문종 때 송나라에 요구한 약재 목록 가운데 침향이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침향이 귀중한 약재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또한 침향 이외에 정향丁香, 목향木香, 안식향安息香 등 다양한 종류의 향이 고려에 유입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는 고려의 향 문화를 찾아볼 수 있는 근거 자료가 상당히 있다. 우선 향의 종류를 설명하는 내용으로 “나라의 중요한 외국 손님이 오면 사향麝香을 피우고, 모임 때에는 독누篤·용뇌龍腦·전단檀·침수沈水 등을 태웠는데 그것들은 모두 임금이 하사한 향이다.” 라고 언급하고 있다. 주변을 청결히 하고 박산향로博山香爐에 녹계향綠桂香을 태우면서 달빛과 향냄새에 취하여 잠드는 차분한 분위기를 향유하는 귀족의 일과를 표현하는 글을 찾아볼 수 있다. 이어서 향 그릇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즉 도할관都轄官과 제할관提轄官이 머무는 관사의 그릇은 은으로 만든 향염香(향합香盒)과 주합酒, 타구唾具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도관道觀과 사찰寺刹, 신사神祀에서 의식을 치를 때 정형향로鼎形香爐를 사용하였다고 하며 박산향로에 대해서는 “연화 같은 산 모양의 뚜껑과 삼족이 달린 몸체에 받침이 붙어 있고 옷에 향 연기를 쏘이는 훈물薰物로 사용하였다”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상의 자료로 보면 고려시대의 향 문화는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으나 왕실과 귀족층을 중심으로 향유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향의 사용범위는 종교의식용, 옷에 냄새를 쏘이는 훈물용, 개인 향유용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고려인이 사용한 향로
고려청자 향로의 아름다움은 중국의 것을 뛰어넘었다. 『고려도경』권32 <도로陶爐>에도 ‘산예출향猊出香’이라는 이름이 나오며 “이는 비색秘色으로 위에 꿇어앉은 사자 모양의 동물이 있고 그 아래에는 앙련仰蓮이 받치고 있다”고 묘사하고 있다. 송宋 주밀周密의 『무림구사武林舊事』에 보면 장준張俊이 고종高宗에게 바친 예단 중에 여요汝窯 출향 한 쌍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쉽게도 여요출향汝窯出香으로 남아있는 것이 없어서 그 형태를 알 수 없으나 이 두 기록은 고려청자와 여요와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고려인이 사용한 향 그릇으로 고려에서 제작한 청자 외에 중국의 자기 향로와 향합이 다수 발견되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중국 송대 청백자 향로와 향합들은 고려유적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장시江西의 경덕진요景德鎭窯에서 제작된 것이 가장 많이 보이며, 그 밖에 푸젠福建 일대에서 만들어진 것도 일부 있다. 이 시기는 거의 송대宋代에 집중되어 있다. 예를 들면 투각透刻 향로(덕수1909)가 있는데 경덕진요景德鎭窯에서 제작된 것으로 높이가 8cm밖에 되지 않는 작은 향로이다. 하반부 몸체와 뚜껑의 비례는 거의 1:1에 해당하며 뚜껑의 윗면 전체에 물방울 모양의 구멍이 뚫려져 향 연기가 빠져 나가게 되어 있다. 일본의 사이다이사西大寺가 소장하고 있는 남송南宋 석각石刻 <석가모니설법도釋迦牟尼說法圖>의 그림 중에 불전 향안香案 위에 출향식 향로를 중심으로 양쪽에는 참외 모양의 향합이 놓여 져 있다. 이와 비슷한 형태의 참외 모양 향합(덕수4456)을 고려인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역시 경덕진요景德鎭窯에서 제작된 것이다. 고려인이 좋아한 향로 가운데에는 방에 두고 향을 피웠음직한 향로가 있는 반면, 한 손에 들어오는 아주 작은 것들도 꽤 있다. 손에 들고 외출할 수 있을 정도의 이러한 작은 향로는 작으면서도 정교한 향합香盒과 세트로 어울렸다고 여겨진다.

 
중국 송·원시기의 향 문화는 한국의 고려와 일본의 가마쿠라로 전파되었으며 각국의 심미관과 결합하여 독자적인 향 문화를 형성하게 되었다. 고려의 향 문화는 왕실과 귀족 중심으로 이루어졌는데 국가적인 불교행사와 의례에 향을 피우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 되었으며 귀족들의 개인 생활 속에도 향유문화로 자리 잡게 되었다. 고려는 우수한 청자 향로, 향합 등을 생산하여 향 문화의 수요에 대처하였으며 중국의 송으로부터는 백자 향로와 향합 등을 사들여 다양한 수요에 대처하는 등 독자적인 향 문화를 이끌어 갔다. 고대 한국인에게 있어서 향은 종교적이거나 의례적이기도 하지만 향은 몸과 정신을 치료하기도 하고, 연인을 위한 화장수가 되기도 하였다. 때로는 유희가 되어 치명적인 즐거움을 주기도 하고 향을 피우거나 담는 향로나 향합은 집안을 장식하는 사치품이 되기도 하였다. 현실과 유토피아의 세계 혹은 지상과 천상을 연결시키는 매개체로 인식하기도 하였다. 향은 인생의 고달픔을 달래주는 한 타래 소망이며 천국이 될 수도 있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사진 | 김영미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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