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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된 아름다움, 궁궐의 꽃담
15-03-29 11:00

궁궐 담장에 베푼 무늬들
건축물을 세우고 꾸미는 데 사용되는 여러 재료 가운데 흙으로 모양을 빚은 뒤 높은 온도로 구워 만든 것이 전돌이다. 전돌은 흙을 빚어 만드는 공예품이지만 건물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최소 단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건축의 기본 요소인 ‘구조’와 ‘장식’을 모두 드러낼 수 있는 미술품인 것이다. 전돌은 처음부터 건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건축과 따로 떨어뜨려 설명할 수가 없다. 형태나 새겨진 무늬에 대해 따로 말할 수는 있겠지만 이것조차도 실제로는 독립된 감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건축물의 일부로 종사하기 위한 형태와 새김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궁궐의 꽃담花紋墻 역시 전돌 또는 벽돌로 이룩한 건축의장建築意匠이다. 전돌 자체에 무늬를 새겨 길상吉祥과 벽사의 뜻을 나타낸 예가 있는가 하면, 여러 전돌 모양과 색을 조합하여 담장이나 벽면을 꾸민 것도 있다. 궁궐에는 수많은 전각殿閣들이 있고, 그에 따르는 문과 담이 있다. 이 문이나 담에는 여러 가지 무늬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많은 수가 전돌로 이루어졌다. 용이나 봉황, 박쥐 등 상서로운 동물은 물론(사진 1) 대나무, 매화, 포도와 같은 식물무늬도 볼 수 있다(사진 2). 동식물 외에도 뇌문雷紋이나 만자문卍字紋, 길상문자문吉祥文字紋의 보기도 아주 많다. 대체로 동식물무늬는 전돌 자체에 무늬를 빚어서 특정한 위치에 끼워 넣은 ‘새김형’이고, 문자나 기하학 무늬는 여러 전돌을 적절하게 배치해서 형상을 구성한 ‘짜임형’이다(사진 3). 꽃담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보물로 지정된 경복궁 자경전의 꽃담과 십장생 굴뚝(사진 4), 교태전의 아미산 굴뚝이다(사진 5). 그래서인지 경복궁 꽃담에 대한 연구는 비교적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또 자세한 편이지만 창덕궁 꽃담에 대한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다.

창덕궁은 조선시대 양궐체제兩闕體制에서 법궁法宮인 경복궁과 함께 이궁離宮으로서 자리를 지켜왔다.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뒤 고종 5년(1868)에 재건될 때까지 폐허로 남아 있던 경복궁과 달리 창덕궁은 불타버렸던 임진왜란 때를 제외하더라도 순종이 창덕궁에서 승하하는 1926년까지 520여 년간 계속해서 궁궐의 기능을 수행했다. 또 경복궁이 없었던 조선 후기에는 창덕궁이 정궁正宮의 지위로 이용되었으므로 조선왕조의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났던 중심 무대였으며, 왕실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가 현존하는 5대 궁궐 가운데 가장 짙게 남아 있는 곳이다.

창덕궁 희정당 굴뚝의 꽃담
창덕궁 희정당熙政堂 앞뜰에 있는 굴뚝을 살펴보자(사진 6). 이 굴뚝 4면에도 상·중·하 3단으로 전돌을 써서 만든 꽃담이 있다. 한 면마다 상단과 하단에는 글자가, 중단에는 무늬전돌이 놓여 있어 꽃담은 모두 12개가 된다. 이 희정당 굴뚝 꽃담의 무늬들을 정리하면 <표 1>과 같다.


동쪽에 새긴 천마는 예로부터 하늘과 소통하는 신성한 영물로 알려졌다(사진 7). 북쪽의 코끼리도 그것을 지칭하는 한자어 ‘상象’이 길상吉祥의 ‘상祥’과 같이 발음되어 길상의 상징물로 취급되는 동물이다(사진 8). 남면 암사슴이 영지를 물고 있는 것은 장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사진 9). 사슴은 십장생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서쪽에 새긴 쌍학과 복숭아도 왕실의 무병장수와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한 무늬이다(사진 10).

북면 상단과 하단에 베푼 ‘강康’자와 ‘녕寧’자 꽃담은 1920년 경복궁에서 왕의 침전인 강녕전을 이건하면서 그것을 표시한 것까지 함께 옮겨다 놓은 것으로 보는 일도 있다(사진 11, 12). 하지만 코끼리 무늬전돌(사진 8)을 가운데 두고 위아래로 배치된 이 두 글자는, 바로 이 굴뚝 다른 면에 있는 ‘영永’, ‘낙樂’, ‘수壽’, ‘부富’와 같은 글자무늬 꽃담과 마찬가지로(사진 13~16) 단순히 기복祈福을 위한 문자일 수도 있어서 경복궁 강녕전을 옮겨온 증거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강녕전을 창덕궁으로 옮겨 지은 뒤에 온돌시설을 만들면서 굴뚝을 신축했다고 보는 것이 좋겠다.




궁궐 꽃담 제작자
그러면 과연 이 궁궐 꽃담과 무늬전돌은 누가 제작했을까?
기록에 따르면 공조工曹에 소속된 와서瓦署에서 규칙적으로 왕실에 필요한 각종 기와와 함께 전돌을 만들어 공급했다. 1865년 제정된 <육전조례六典條例> 공조 조항에 와서에서 방전方塼과 대방전大方塼을 만들어 왕실에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또 『대전회통大典會通』에 따르면 태조 원년(1392)에 와서를 설치하여 고종 19년(1882)에 폐지하였다. 그 관원으로는 종2품관에 해당하는 제조 두 명, 종6품관인 별제 세 명이 있었지만 한 명을 더 줄였다는 기록이 있다. 『만기요람萬機要覽』에도 태조 원년에 동요東窯와 서요西窯를 두었는데 나중에 이를 합하여 와서로 개칭하고, 별제 두 명, 서리 두 명, 고직 한 명, 사령 두 명으로 여러 관원들을 배치하였다고 나온다.
와서에서 생산된 기와와 전돌은 대와大瓦·방초防草·상와常瓦·토수吐首·잡상雜像·용두龍頭·당와唐瓦·당방초唐防草·연가잡상煙家雜像 따위 기와와, 방전·대방전·반방전半方塼 따위 전돌들이다. 이런 사실을 보면 와서는 필요에 따라 왕실의 꽃담용 전돌을 구워서 공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기록에 나오는 ''연가잡상''이라는 말은 ‘굴뚝의 잡상’이라는 뜻일 텐데, 아마도 굴뚝에 설치된 무늬전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전돌은 와서에서 만든다고 해도 궁궐의 꽃담을 기와공들이 직접 설치했다고 볼 수는 없다. 전돌이나 벽돌을 쌓아 건물이나 담장을 세우는 일은 미장이泥匠들이 할 일이기 때문이다. 또 전돌 자체에 무늬나 글자를 새기는 일은 와서에서 이루어졌을 수도 있지만 부조浮彫의 바탕이 되는 밑그림은 화원畵員이 작성했을 가능성도 크다.

이런 사실들을 바탕으로 ‘꽃담을 만든 사람들’에 대해 좀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전돌을 빚거나 전돌에 무늬를 새기는 일은 와서에 소속된 와장瓦匠이 한다. 흙을 능숙하게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무늬를 빚을 전돌의 밑그림은 그림과 도안에 능한 화원에게 맡긴다. 왕실의 계획대로 만들어진 전돌은 궁궐 공사현장에 공급되어 미장이들이 꽃담을 만들 수 있게 한다. 미장이들은 삼화토(三華土: 진흙, 누런 모래, 강회를 같은 비율로 섞어 이겨 만든 흙)를 써서 전돌과 전돌 사이를 메꾸어 나간다. 무늬가 있는 전돌은 미리 정해진 자리에 끼워 맞추면 되지만, 전돌의 모양과 배치를 이용해 구성하는 꽃담은 미장이들이 가진 고도의 기술과 경험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꽃담이 완성되면 무늬전돌 표면에 색을 입히는 과정도 거치게 된다(사진 17). 아마 이때는 단청장이 동원되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화원한테 직접 맡겼을 수도 있다. 이렇듯 벽돌공과 미장이, 단청장이나 화원이 모두 참여하여 만드는 꽃담은 여러 이름 모를 장인들의 공동 작품이기도 하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사진 | 한재원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홍익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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