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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궁중음식의 맥을 잇다
15-03-29 11:17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맥을 잇다

「궁중음식」은 조선왕조 519년(AD 1392~1910) 동안 서울에 소재한 궁궐 창덕궁, 경복궁, 덕수궁 등에서 왕족들이 실제 먹어온 일상식과 연회나 가례, 연향, 영접 행사 때 차려진 의례음식들로, 한국 최고 수준의 음식 문화를 간직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궁중의 음식문화는 극도로 세련되어졌으며, 음식의 조리 기술 뿐 아니라, 이를 진설하는 식기와 상차림, 의례의 절차 등 음식 문화의 발달은 주목할 만한 경지에 이르렀다.  


실제 대중화된 음식들은 조선왕조의 왕통을 이어 받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와 황손이 1960년대까지 창덕궁 낙선재에 거주하였을 때 생존한 왕족과 궁녀들의 구전, 주방 상궁·대령숙수들의 조리 시범으로 전수받은 종목들이다. 가장 전승을 잘해준 이들은 왕인 고종, 순종의 시대를 거친 당시 생존해 있던 4명의 궁중내인들이었으며 그중 1명인 한희순만이 고종 때 13살에 궁에 들어와 왕조가 끝날 때까지 음식 만드는 일만을 한 주방 상궁이었다.  
1940년대부터 궁중 음식 조리 기능이 극소수의 일반인에 전수되기 시작했으며 정식으로  1970년 국가적 차원에서 전통 한국음식문화의 원형보호와 전승을 목적으로 「조선왕조 궁중음식」을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로 지정하고 사단법인 「궁중음식연구원」을 전수기관으로 정하여 일반인을 대상으로 궁중음식을 가르치게 되었다. 무형문화재 38호 조선왕조궁중음식의 기능을 가진 1대보유자로 지정된 한희순이 1년간 전수활동을 하신 후 돌아가셨으며 그를 문화재기능보유자로 되게끔 노력을 했던 황혜성이 2대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궁중의 식생활 문화
조선 시대는 왕권 중심 사회이므로, 모든 문화는 궁중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며 특히 궁중의 식생활은 북쪽의 함경도에서 남쪽의 제주도까지 전국에서 모여지는 가장 품질이 좋은 진상물로 고도의 조리 기술을 지닌 주방 상궁과 숙수들에 의하여 완성되었다. 「조선왕조 궁중음식」은 조선시대에 왕족이 평상시에 하루의 시간대로 보아 아침·저녁·오후시간 그리고 밤에 먹게 되는 반상(수라상)·죽상·면상·다과상으로 5~6차례 올려 졌고 적어도 3일간 잔치가 진행되는 연회시에는 미수상(술안주상), 다소반과상, 진어상 등 여러 차례 음식상을 차려냈다.
『영조실록』에서는 왕의 식사횟수를 ‘대궐에서 왕족의 식사는 예부터 하루 다섯 번이다’라고 했으나 영조처럼 하루 3회를 먹은 왕도 있다. 궁중의 일상식이 가장 잘 나타난 기록은 정조 때(1795년)의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로 대비(왕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에게 7차례의 음식상을 낸 적도 있다는 기록이 있다. 궁중에서의 식사는 늘 호사스럽게 산해진미를 늘 먹었던 것은 아니며 왕의 식성에 따라, 궁의 상황에 따라 달랐다.
마지막 왕조의 왕족(고종, 순종, 윤비)을 모셨던 생존자들의 구술에 의하면 궁중에서는 왕이나 왕비께 평상시에는 아침·저녁의 수라상과 이른 아침의 초조반상, 점심의 낮것상 등 4번의 식사와 야참을 올린다. 조석 수라상은 12첩 반상으로, 이는 한 상에 차릴 수 있는 음식 수의 최대치이다. 수라는 백반(흰밥)과 홍반(붉은팥물밥) 2가지와 육류·채소·해물류로 만든 12가지 찬물과 국, 찜, 조치, 김치류와 장류를 붉은 칠을 한 큰원반에 차린다. 12가지 찬 중 3가지는 계절의 가장 맛있는 별식으로 차린다. 대원반 옆에는 전골상을 네모진 상에 차리며 불을 핀 화로를 놓고 즉석에서 따끈하게 끓이거나 볶아서 올린다. 곁반은 원반보다 조금 작은 붉은 칠을 한 것으로 여분의 그릇과 차수(숭늉) 등을 놓는다. 수라상 음식은 모두 은으로 된 반상기에 담고 은수저를 놓는다. 이른 아침에는 죽과 마른 찬, 국물김치로 차린 죽상을 올렸고 점심상은 온면(또는 냉면)을 주식으로 편육·회·전유화·신선로 등의 찬물을 한데 차린 면상을 올렸다.

12첩 수라상은 어찌 보면 궁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에서 이루어 진 것이기에 보통사람들이 본다면 지나친 낭비로 보여 지기도 한다. 그렇지만 12첩 한상에서 임금은 일일이 지역을 다니지 않아도 백성들의 삶과 계절을 이해할 수 있는 본보기라 할 수 있다. 각기 색이 다르고 음양으로 나누어진 고기류와 채소가 각각의 조리법으로 맛과 모양을 다르게 하여 만들어서 한상에 차려 먹게 하는 수라상차림은 산, 바다, 강, 들의 자연의 기운을 한 번에 느낄 수 있고 영양적으로도 골고루 섭취되니 약식동원이라 할 수 있다. 약식동원은 좋은 음식을 약으로 생각하여 먹게 함으로써 건강을 미리 살핀다는 뜻이 된다.




궁중의 연회식
궁은 의례儀禮를 기본이념으로 하여 중히 여겼기에 제사와 잔치 문화가 발달하였다. 궁중음식의 전모는 궁중의 의례에서 가장 잘 짐작할 수 있다. 궁중의례는 왕족의 혼인인 가례, 왕족들의 기념할 만한 날의 연회, 외국사신의 영접, 왕의 나들이, 종묘제사, 장례가 있다. 모든 것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행하는 행사이기에 일의 진행을 잘하기 위해 도감(집행부)을 설치하고 행사가 진행되는 경과를 일자별로 기록하였다가 의궤儀軌라는 기록물을 만들어 보관한다.
연회宴會기록인 진찬의궤進饌儀軌.진연의궤進宴儀軌안에 잔치의 준비과정, 차려진 상차림과 올린 음식의 재료와 분량, 의식의 순서에 따라 내놓은 음식의 내용 등이 상세히 쓰여 있다. 연회는 왕과 왕비의 생신, 회갑, 세자 책봉 등 왕실의 경사 때, 그리고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거행하였다.



왕족께는 진어상을 올리고, 친척·신하 그리고 여령과 군인 등 참가자 전원에게 상차림의 규모를 달리하여 사찬상을 내린다. 궁중의 무형문화재 중 기능으로 만들어진 궁중유물들은 남겨져 후세사람들이 그대로 만들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음식은 만들어도 일시적으로 존재하고 먹어버리니 원형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궁중무용이나 음악 등은 의궤에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 복원이 가능하지만 일상적인 생활의 반복인 음식 만들기는 그림이나 글로 남긴다는 것은 생각도 못하는 때였기에 어느 누구도 궁중음식의 실체를 확실하게 입증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러나 ‘궁중음식’의 실물은 전혀 남아있지 않다 해도 잔치기록인 『진연의궤』, 『진작의궤』와 『음식발기』등에 상차림의 종류, 음식명, 재료와 분량이 나오고, 담은 그릇과 상, 그리고 조리기구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기에 앞으로 궁중음식의 연구는 무형의 문화유산 발굴이나 마찬가지라 하겠다. 무형의 유산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는 조선왕조의 궁중음식이 현대인에게 뜻하는 바를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궁중음식’이 세계인이 공유 가능한 음식문화로서 미래의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가치를 찾아 볼 수 있다.


근년에 세계적으로 웰빙(Well-Being)과 LOHAS(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며 건강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조선왕조궁중음식」은 독자적 음식문화를 가지며 다음과 같이 자연 친화적 건강기능성임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궁중음식에는 모든 먹을거리가 사용하기에 따라 몸에 약이 된다는 약식동원사상과  음양오행의 우주 원리가 조화롭게 담겨있다. 둘째, 제철의 채소와 어패류·수조육류를 활용하여 다양한 조리법으로 음식의 종류가 매우 많다. 셋째, 한 가지 음식에 동물성 식품과 식물성 식품을 복합적으로 쓰고, 천연 조미료를 적절히 배합하여 영양적으로 균형을 이루고 맛이 매우 다양하다. 넷째, 약리효과가 큰 마늘·생강·고추·후추 등의 양념과 인삼·대추·계피·감초 등의 한약재를 일상음식에 사용한다. 다섯째, 참기름·들기름 등 식물성 기름을 적정히 사용한 저열량의 건강음식이다. 여섯째, 영양과 기능성이 우수한 김치와 된장·간장·고추장등의 장류와 젓갈 등 발효식품이 발달되어 있는 자연친화적 슬로푸드이다. 일곱째, 오미와 오색의 조화를 이루어 맛이 좋고, 보기에 모양이 아름답다. 여덟째, 재료를 채 썰고, 다져서 정성 들여 만드는 조리법은 소화 흡수를 잘되게 하는 건강 조리법이다.
「조선왕조궁중음식」은 앞으로의 문화경쟁시대에 더욱 주목하여야 할 분야로 한 텔레비전 드라마 ‘대장금’에서는 한국 음식문화의 과학적이고 미학적인 전통을 강조해 세계인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갔다. ‘대장금’은 아시아를 비롯하여 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인기 있는 문화상품이 되어, 한국의 국가 이미지 향상에 크게 기여했음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바이다. 이처럼 궁중의궤에 나타난 궁중음식과 궁중음식의 영향을 받은 양반층의 음식 책들이 연구와 재현을 통해 종합예술문화로 복원이 될 때 위대한 무형의 문화유산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재창조되리라 본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한복려 조선왕조궁중음식 기능보유자  사진·궁중음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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