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악(중요무형문화재 제 11호)은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서로 도우며 일할 때 연주하는 음악으로, 넓은 의미로는 꽹과리, 징, 장구, 북과 같은 악기를 치며 행진, 의식, 노동, 판놀음 등을 벌이는 음악을 두루 가리키는 말이다. 굿, 매구, 풍장, 금고, 취군 등으로도 불린다. 농악의 다양한 명칭과 기능 흔히 농악農樂이라 하면 ‘농사음악’ 정도로 이해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실제 농악은 농사를 지을 때, 즉 모를 심거나 논을 매는 과정에서 연주되지 않는다. 모를 심거나 논을 맬 때에는 북을 반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보통이다. 농사와 관련된 농악을 일명 두레굿이라 부르는데, 두레굿은 주로 농기(주로 물을 관장하는 용을 그린 용기)를 앞세우고 들에 나갈 때, 또 논일을 마치고 다시 농기를 앞세워 집으로 돌아오는 행진에서 연주된다. 즉 농사를 짓는 일과 관련 없이, 농신을 위한 행진음악으로 연주되는 것이니 이는 제의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 문화재로 지정된 어느 지역에서도 전통적으로 ‘농악’이란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농악에 대한 본디 명칭은 매구, 굿, 매굿, 풍물, 풍장, 두레, 걸궁, 걸립, 군고, 금고, 마당밟기, 지신밟기, 뜰밟이 등으로, 지역마다 기능마다 다른 이름들이 붙여진다. 또한 1980년대 대학가를 중심으로 풍물굿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현재 초등교과서에는 ‘굿’이라는 용어 대신 ‘풍물놀이’라는 용어를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 즉 농악을 지칭하는 용어들에는 농악의 역사와 기능, 지역적 특성, 특별한 계기나 목적 등을 포함하고 있어 하나하나 의미 있게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처럼 농악에 많은 명칭이 사용되는 가장 큰 이유는 농악의 다양한 기능과 지역별 전승에 있다. 제의적 기능으로 농악을 연주할 경우 굿, 매굿, 매구, 지신밟기, 마당밟기와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노동과 관련된 기능에 사용할 경우에는 두레, 풍장과 같은 용어를 선택한다. 또한 기금마련을 위한 연주라면 걸궁, 걸립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며, 놀이판을 크게 벌려 연주할 때에는 그것을 판굿이라 한다. 그런가하면 마당밟기와 같은 용어는 호남지역에서 많이 사용되고, 금고나 군고와 같은 용어는 남해안을 중심으로 사용되며, 지신밟기는 영남, 경기농악에서 두로 사용되고 있어 지역별로도 용어 사용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경기지역의 무형문화재 11-나호 평택농악에서는 정초에 지신밟기를 하고, 농사철에는 두레굿을 치고, 겨울에는 걸립굿, 초파일에 등대굿, 단오날 난장굿을 연주하였다고 한다. 반면 호남 좌도에 해당하는 11-마호 필봉농악에서는 섣달그믐에 매굿을 치고 정초에 마당밟기를 하며, 이외에도 걸궁굿, 두레굿, 기굿, 판굿 등이 연주되었다고 한다. 정작 농악이란 용어는 일제강점기부터 사용되었다 하며, 매구나 풍장과 같은 전통용어에 비해 실제 기능이나 의미를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런데도 학계의 관습에 의해 농악이란 용어를 계속 사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농악에 대한 보다 심도 있는 이해와 논의를 위해서는 전통용어의 활용이 불가피함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좀 더 적극적으로 전통용어를 활용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판굿 위주의 전승이 주는 허와 실 농악의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기능의 농악이 전승되고 있지만, 우리가 무형문화재의 공연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것은 판굿이다. 농악의 기능 가운데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던 제의적 기능은 사회적 변화로 말미암아 점점 전승의 힘을 잃어가고 있는 반면, 제의성보다는 예술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판굿이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농악의 대표성을 띤 장르로 새롭게 자리하게 된 것이다. 판굿은 걸립이나 마당밟기(지신밟기나 뜰밟이), 또는 호미걸이를 할 때 넓은 마당에서 연주되었다. 판굿을 연주할 때에는 갖은 장단과 진풀이, 갖가지 기예를 모두 발휘하게 된다. 그래서 판굿은 예술적 세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농악공연 중 가장 하이라이트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현재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대부분의 팀들은 이른바 뜬쇠들에 의해 다듬어지고 알려진 지역들이다. 진주삼천포농악의 황일백, 문백윤, 평택의 최은창, 필봉의 박학삼, 양순용, 이리의 김형순 등 한 마을에 국한되지 않고 넓은 지역을 무대로 활동을 펼쳤던 이들의 존재가 바로 지금의 중요무형문화재를 있게 한 것이다. 뜬쇠들이 갖추었던 예술적 세련미와 고도의 기량은 농악을 일반 민중의 생활음악에서 직업 음악인들의 예술음악으로 한 차원 높여 주었다. 그러나 판굿에 집중된 중요무형문화재 팀의 반복적 공연은 예술성 있는 공연을 보여주며, 높은 기량에 대한 끊임없는 자극이 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농악의 다양한 기능과 목적을 온전히 전승하지 못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보편적으로 전승되는 생활음악으로서의 농악을 대변하지 못하는 점도 아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농악의 여러 기능과 목적에 따른 다양한 연행 형태들을 기억하고 전승할 수 있도록 하는,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농악과 사물놀이, 그 차이는 무엇인가? 판굿 위주의 공연은 최근 들어 사물놀이의 범주 확장과 관련하여 또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사물놀이는 분명 농악과 다른 장르이다. 사물놀이가 농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음은 분명하지만, 현재 연주되는 사물놀이는 농악과 음악적 내용과 정서적 지향점이 전혀 다른 장르가 되어 있다. 쉽게 표현하자면 농악이 향토민요에 해당한다면 사물놀이는 최신유행가요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사물놀이는 대중성에 초점이 맞추어진 음악이며, 그러한 목적을 위해 짧고 강렬한 음향과 속도경쟁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물놀이는 최근에 새로운 변화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무대에서 네 가지 악기를 앉아서 연주하던 초창기 사물놀이에서 벗어나, 서서 연주하는 선반과 많은 치배(연주자) 구성으로 형태를 다양화하여 그 범주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형태적인 면에서는 농악과 별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농악은 판굿 위주로 공연하면서 예술성과 기량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고, 사물놀이는 충분히 대중화되고 자극적인 음악을 다시 농악에 가깝게 형태 변화하고 있다. 양자가 서로 비슷한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특히 농악의 젊은 연주자 일수록 사물놀이의 대중성에 매력을 느끼며, 사물놀이 연주자 역시 선반의 역동성에 끌린다. 농악과 사물놀이가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질 것인가? 과연 농악은 사물놀이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 넘어서기 위해 어떤 점을 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을 것인가? 결국은 농악은 농악다움으로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사물놀이를 무작정 흉내 내거나 쫓아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농악의 판굿 공연에서 예전 농악의 맛을 보여주기 보다는 사물놀이처럼 변화된 가락과 정서들을 만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사물놀이로 인한 일시적인 문화적 충격의 결과일 뿐, 시간이 지나면 그 모든 것을 녹여내어 다시 농악다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어본다.
지역별 농악과 음향적 이해 농악공연을 관람하면서 어떤 부분에 감동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이는 가락에 심취하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상모춤과 무동놀이와 같은 볼거리에 더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취향들이 일정한 문화권적 특성으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어느 지역 사람들은 북소리를 사랑하고, 또 다른 지역 사람들은 맑은 쇠소리를 더 좋아하며, 난이도 있는 부들상모를 즐기는가 하면, 역동적인 채상모나 열두발 상모에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5대농악은 어떤 점을 각각 특색으로 내세우는지 살펴보자. 11-가호로 지정된 진주삼천포농악은 영남농악에 속하면서도 남해안의 문화권적 특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즉 남해안의 농악은 군고, 금고와 같은 명칭을 사용하며 군악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는데, 진주삼천포 농악 역시 군사놀이인 팔진해식진굿이 있고, 모든 치배가 전립을 쓰고 상모를 돌리는 등 일사분란한 진풀이와 상모춤에서 군악적 특성을 보인다. 또한 이 지역의 옛 상쇠인 황일백의 꽹과리 소리가 ‘영롱하고 부드러웠다’는 표현에서 맑고 높은 소리의 꽹과리 소리를 즐겼음을 알 수 있으며, 이 지역의 말이 그렇듯 대체로 가락이 높고 빠르다. 정반대의 꽹과리소리는 호남농악에서 들을 수 있다. 11-다호 이리농악과 11-마호 임실필봉농악은 각각 호남우도농악과 호남좌도농악에 속한다. 호남농악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가락 자체를 중요시한다. 흔히 호남의 상쇠들은 꽹과리가락을 구음으로 표현할 때 선율에 얹어 노래를 한다. 상쇠들이 쇠가락을 노래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느린 가락을 많이 사용하며, 가락 하나하나가 계획적으로 변화되고 연결된다. 꽹과리의 음색은 영남농악에 비해 낮고 두터우며, 전체적으로 북과 소고의 수가 많아서 전체 음향이 저음에 가깝다. 이외에도 상쇠의 부포놀이가 다양하고 설장구춤의 장구가락도 매우 섬세하며, 진법의 종류와 형태도 다양하다. 11-나호 평택농악은 웃다리 농악(경기충청농악)에 해당하며, 남사당패의 연예농악에 영향을 받아 일반인들의 생활음악에서 보기 힘든 연행 내용들이 수용되어 있다. 특히 3무동, 5무동과 같은 무동놀이가 특화되어 있어 악기 연주보다는 무동놀이를 중요시하는 특성이 있으며, 가사의 내용과 구성이 풍부한 고사 덕담이 함께 전승되고 있다. 11-라호 강릉농악에도 무동놀이가 전승되고 있는데, 평택과 달리 입체적인 형태로 쌓는 점이 다르다. 또한 강릉농악에는 다른 지역에 없는 농사풀이가 있는데, 풍농을 기원하는 의미의 농사풀이는 연예농악적 성향의 판굿과 다른 성격의 것이어서 더욱 주목된다. 그러나 강릉농악의 가락은 다른 지역에 비해 매우 단순한 구조로 되어 있다. 다른 지역 농악과 비교해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가락보다는 무동놀이와 같은 볼거리에 더욱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ㅣ김혜정 경인교대 교수 일러스트ㅣ이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