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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에서 만나는 살아있는 제례와 음식문화 전통문화 전승의 현장
15-03-29 11:34

종가는 우리 민족의 정신세계에 뿌리내리고 있는 유교문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역사 속 굵직한 획을 그었던 명문 종갓집들의 제례문화와 특색 있는 음식문화를 통해 선조들의 간소하지만 정성된 마음을 느껴본다. 제례의 구분 제례는 모시는 주체에 따라 국가의 제례, 학교 등에서 행하는 사회의 제례, 일반 가정에서 개개인이 지내는 제례로 나눌 수가 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예서인 『국조오례의』에서는 제사의 대상을 천지인 삼재三才로 분류하고, 제례의 등급을 대사大祀, 중사中祀, 소사小祀, 기고祈告, 속제俗祭, 주현州縣으로 구분하였다. 『종묘의궤』나 『사직서의궤』 등의 의궤라든가, 대한제국의 『대한예전』등에 국가의 제례에 관해 기술했다. 그 밖에도 『조선왕조실록』의 「숙종실록」에는 “제향祭享에 쓰는 준뢰樽·변두豆에 담는 제물 중에서 『오례의五禮儀』의 도식圖式에 어긋나는 데가 있는 것은 낱낱이 바로잡아 본서本署와 봉상시奉常寺에 나누어 주어 살펴서 장만하게 하는 일을 분부하였다.”거나, “녹포鹿脯는 봄·가을에 포를 만들 소牛의 값을 호조戶曹에서 준다.”는 등의 내용이 실려 있고, 예서와 맞지 않는 제물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등에 관한 논의가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의 제사 중에서 종묘대제나 사직대제는 지금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고, 매년 행해지고 있다. 국가제사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행하던 제례도 있었는데 중앙의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 등 공립학교와 개인이 세운 서원 등 사립학교에서 각각 봄과 가을에 배향하는 인물을 추모하는 것이 여기에 속한다. 이중에서 성균관의 석전제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매년 성균관에서 진행하고 있다. 이들 국가 제례와 학교 제례의 제물은 날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지내는 제례의 절차나 음식과 사뭇 다르다. 제기祭器도 변, 두豆, 보와 궤, 형, 조俎, 작爵 등을 사용하고 있어서 집안의 제사에서 사용하는 것과 다르다. 가정의 제례에 관해서는 주자의 『가례』, 김장생의 『가례집람』과 『상례비요』, 이이의 『격몽요결』, 이재의 『사례편람』 등에서 언급하고 있다.

종가의 제례 제사에는 4대 조상에 관한 기제사, 설·한식·단오·유두·칠석·추석·중양·동지 등 명절이나 계절에 따라 새로운 음식을 올리고 지내는 약식제사인 차례(혹은 절사), 음력 시월에 날을 잡아 조상의 묘소에서 제례를 올리는 묘제 등이 있다. 차례는 오늘날 설과 추석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지내지 않고 있으며, 묘제의 경우에도 안동지방에서는 ‘시사時祀’또는 ‘시제時祭’라고도 하고, 일부 경상도 지방에서는 기제사의 대상인 4대조를 포함하여 모든 조상을 대상으로 하기도 한다. 기호지방에서는 친진親盡된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만 지내므로 ‘세사歲祀’, ‘세일사歲一祀’, ‘세일제歲一祭’라고도 한다. 『가례』에는 3월 상순에 날짜를 정하여 묘제를 지낸다고 되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옛날부터 묘제를 중시하여 속절에 묘제를 지내왔으며, 또 음력 10월에 따로 날을 정하여 지내기도 한다. 결국 묘제의 대상이나 시기 등은 지방과 가문에 따라 일정치가 않다. 일반가정과는 달리 종가에는 사당을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부모의 4대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4대봉사라고 한다. 그러나 나라에 큰 공적이 있는 공신이나 학덕이 높은 유현에 대하여 4대가 지나도 그 신주를 없애지 않고 그 자손이 영원히 제사를 모시는 신위를 ‘불천위不遷位’라 한다. 불천위는 나라에서 인정한 국불천과, 유림에서 인정한 향불천 또는 사불천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제례의 순서는 대개 강신, 참신, 초헌, 아헌, 종헌, 사신, 음복의 순으로 이어지는데, 신을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하고 보내드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묘제의 경우에는 강신이 먼저냐 참신이 먼저냐에 관해서 집안에 따라 달리 해석하고 있다. 이는 예서에서조차 서로 다르게 규정하고 있는데, 『가례』를 비롯한 대부분의 예서에서는 묘제에서 참신을 먼저하고 강신을 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율곡의 『격몽요결』, 『제의초』에는 강신을 먼저하고 참신을 나중에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합설과 단설의 경우, 예서에서는 기일에 해당하는 조상은 한 분이기 때문에 단설로 지내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인정상 배우자와 함께 모시고 지내는 합설이 관례화되어 왔다. 지금도 예서의 규정대로 단설로 지내는 집도 있기는 하지만 합설이 일반화되는 추세이다. 예서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조상의 제례에 관한 언급이라든가, 제의절차 등에 관한 사항, 제기 등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청송심씨 심온 종가는 세종의 왕비인 소헌왕후의 친정인데, 소헌왕후는 세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후가 되었다. 심온은 국구가 되어 명나라에 세종의 즉위에 알리기 위한 사신으로 임명되었으나 누명을 쓰고 죽음을 당했다. 이에 소헌황후의 어머니와 친족들은 관비가 되었다. 이후, 『조선왕조실록』에는 당시 조정에서 임금의 외조부인 심온과 합장한 부인 순흥안씨의 제사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한 내용이 보인다. 『세조실록』에는 “의정부에서 예조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임금의 외조부 안효공심씨와 그의 아내 삼한국대부인 안씨의 분묘는 한식, 추석마다 구례에 의하여 향과 축문을 내려서 소재 읍의 수령으로 하여금 제사를 거행하게 하소서’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문종실록」에는 “졸卒한 영의정부사 심온의 분묘에 사용할 제기를 삼한국대부인 안씨 묘소의 제기에 예에 의하여 고동 향로·유향합·유잔·유선·유병 등의 기명器皿을 공조工曹로 하여금 제조하여 주게 하소서.”라고 하니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종가의 음식 종가의 제례음식은 각 종가가 위치한 지역이나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서 달리 나타나기도 한다. 먼저, 해안과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고산 윤선도 종가 혹은 죽천 박광전 종가의 제례음식과 영남의 내륙에 위치한 퇴계 이황 종가나 충재 권벌 종가의 것이 비슷하거나 같을 수 없다. 바다 인근에 있는 종가의 경우에는 신선한 해산물과 꼬막 등을 재료로 제물을 만들고, 내륙에 있는 종가의 경우에는 말린 생선과 소금에 절인 생선 등으로 제물을 장만하기도 한다. 동일한 지역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종가가 처한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서도 제물은 달리 나타나기도 하고, 형제간이라고 하더라도 제물의 진설이 달라지기도 한다. 종가의 설과 추석 차례는 주·과·포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는 것으로 간소하게 준비한다. 또 종가는 매우 규범적이고 철저해서 정해진 것 이외의 음식은 함부로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일반가정과 큰 차이가 없다.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음식을 올리는 사례도 있다. 응와 이원조 종가에서는 고인이 평소 즐겼다던 ‘집장’을 꼭 만들어 올린다고 한다. 집장이라는 것은 장의 일종인데, 메주를 빻아서 고운 고춧가루 따위와 함께 찰밥에 버무려 장항아리에 담고 간장을 조금 친 뒤에 뚜껑을 막은 다음 두엄 속에 8~9일 묻었다가 꺼내 먹는 장이라 손이 많이 가는 것이다. 이 댁에서는 왕겨에 묻어두고 하룻밤동안 은근한 불에 익히는데, 가끔씩 시간이 부족할 때는 중탕해서 만들어 올린다고 한다. 그만큼 고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깊어 그 음식을 빼놓지 않으려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서애 류성룡 종가에서도 고인이 평소 즐겼던 ‘중박계’라는 음식을 올리는데, 이는 밀가루를 반죽해 발효시켜 튀겨낸 음식으로 과자의 한 종류이다. 맛은 건빵과 비슷했는데 류성룡이 생전에 전시에 드셨던 음식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어찌되었든 17세기에 돌아가신 고인이 생전에 즐겼다던 음식을 21세기인 오늘날까지 잊지 않고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다.

충재 권벌 종가에서는 ‘오색강정’을 제사에 꼭 사용하는데 깨, 흙임자 등을 이용해서 만든 누에고치 모양의 한과이다. 이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1군 1품목운동을 실시하면서 ‘닭실종가 전통유과’로 상품화 하게 되었고 지금은 명절이 되면 선물용으로 많이 구입한다. 퇴계 이황 종가에서는 포를 특별하게 진설하고 있었다. 포는 예서를 비롯해 일반적으로 제사상의 왼쪽에 진설한다고 했으나, 이 댁에서만은 특별히 과실의 중간에 진설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   글·사진 | 최숙경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 무형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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