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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길 따라 문화재 따라
15-03-29 20:23

01. 위풍당당한 여수 진남관
광양에서 여수로 넘어오다 바로 오게 된 순천왜성(전라남도 기념물 제171호). 도착하여 아래에서 위를 바라보며 걸으니 공기는 더 없이 맑고 서늘하여 앞서간 사람의 목소리도 똑똑히 들렸다. 이 성은 1598년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과 소서행장이 이끄는 왜군 사이에 결전이 벌어진 곳이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소서행장을 노량 앞바다로 유인하여 대승을 거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가여운 삶을 살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성 위에서 내려다보니 이제는 율촌산단이 한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바다가 저 멀리 밀려났지만, 그 예전에는 바로 앞이 바다였으리라. 잠시 앉아 있었지만 정신이 아득하여 성을 빙 돌아 멀리 걸어 내려왔다.
오림동 지석묘를 지나 하멜등대에 주차를 하고 여수 진남관(국보 제304호) 쪽으로 걸으니 돌산대교를 배경으로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출출할 때라 횟집에 들러 작은 서대회를 시키고 앉아 있자니 식당 벽면에 1900년대 쯤 되는 진남관 사진이 걸려 있다. 그 모습이 아주 당당하고 아름다워 회 한 접시를 비우고 나와 곧장 진남관으로 향했다. 과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중심기지로서,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서 있는 아름다운 진남관은 서울 종묘 건물처럼 기둥이 굵고 간결하여 당당한 느낌이 확연히 드러났다.
예전 임진왜란 때 사람들이 의주와 남쪽바다 한 구석인 여기까지 어찌 오고 갔을까 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마루 위에 앉아보기도 하고, 진남역사관을 둘러보기도 하고, 어린 남녀 중고생들이 웃으며 지나가는 것도 보다 하루를 마감했다.
둘째 날 아침,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던 여수 선소유적(사적 제392호)을 한번 둘러본 뒤 언덕배기를 올라가 남쪽 바다를 바라보았다. 남도의 바다 우측에서 전라우수영의 판옥선이 물결 헤치고 왔으리라. 이 년 전 역시 혼자 남해 관음포 이충무공 유적(사적 제232호)에서 노량을 바라볼 때와 교차하는 묘한 느낌으로 400년 전 임진 수군인지 지금의 나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여수 석창성지(전라남도 기념물 제160호)를 지나 순천 검단산성(사적 제418호)에 도착하니 다각형의 건물지가 있다. 하남 이성산성에서 본 것과 동일한데, 원삼국시대 신성한 지역인 소도(蘇塗)처럼 하늘에 제사를 지냈을 곳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02.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바라본 일몰
03. 광양 중흥산성삼층석탑
아름다운 광양 중흥산성 삼층석탑(보물 제112호)을 보고 옥룡사지(사적 제407호)에서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제489호)에 취하니 해가 지기 시작하였다. 바쁘게 순천 정혜사로 가서 대웅전(보물 제804호)을 구경하니 한 쪽에서 처사님이 장작을 패고 계시기에 화목 보일러 구경도 할 겸, 나무 타는 구수한 냄새도 맡을 겸 처사님을 도와드리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시 구례로 향하는 길, 섬진강을 따라 압록강을 거쳐 구 곡성역사(등록문화재 제122호)를 잠시 보고 남원 대곡리암각화(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3호)를 지나 임실 용암리로 가던 중, 마을 옆 강가에 잠시 주차를 하고 하늘과 주위를 둘러보았다. 깜깜하고 적막한 주위 풍경 위로 너무나 맑은 달이 떠 있었다.
마치 은하수를 여행하듯 적막한 동네에 자동차 불빛으로 석등을 비춰가며 이리저리 보았다. 거대한 석등이 있었고 마을을 나트륨 가로등이 노랗게 비추고 있었다.
‘홀로 여행’의 끝자락,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가슴 가득 들어오는 서늘한 공기, 겨울의 적막함과 밤하늘의 맑은 달, 정감 어린 노오란 불빛의 석등을 뒤로한 채 번잡한 도시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여기는 전라좌수영이다.
 
                출처 : 문화재청홈페이지  글·사진 김장수(관동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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