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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양평 용문사부터 구둔역까지 천년의 여행
15-03-29 21:55

01. 소백산 자락 용문산에 자리한 용문사. 왜란과 한국전을 거치며 수차례 훼손되어 중수와 보수를 거듭해 현재는 대웅전·지장전·관음전·삼성각·종각·요사채·일주문 등이 현존한다
양평에 용문사가 있다
‘물의 고장’양평은 가까웠지만 무슨 영문에서인지 용문사龍門寺에 가본 적은 없었다. 맛집을 찾거나 분위기 좋은 카페, 혹은 펜션에는 많이들러 봤지만 사찰에 간다거나 문화재를 본다거나 하는 것은 왠지 양평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보지만 않았을 뿐 양평에는 용문사가 있었다. 팔당대교를 건너, 용문터널을 지나 바로 그곳에.
겨울의 초입, 마지막 잎새가 쓸쓸하게 달리는 계절이었지만 따사로운 햇살 탓이었을까? 분위기가 그리 을씨년스럽지는 않았다. 가슴 깊이 공기를 들이 마시고 천천히 걸어 들어간 용문사. 어느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사천왕상은 없고 대신 커다란 나무가 방문객을 맞는다.
그리고 용문사에는 은행나무가 있다
높이 40m, 둘레 11m, 수령은 1100~1500년 추정. 동양의 유실수로는 가장 큰 나무로 기록에 올라있다는 용문사 은행나무는 숫자로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특별해 보였다. 이 나무의 유래는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敬順王의 마의태자(신라 56대 경순왕의 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던 길에 심은 것이라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뿌리를 내리고 이처럼 성장했다고도 한다.
1100여년 동안 나무는 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는 나라의 흥망성쇠를 지켜봤고 임진왜란과 한국전을 겪어냈다. 그 사이 용문사는 불에 타고 폭탄에 훼손당했지만, 이 나무만큼은 꿋꿋이 생명력을 지켜왔다.
용문사로 걸어 들어간다. 대웅전에 오르려니 처마 밑에 오순도순 앉은 동자상들이 눈에 띈다. 누군가 가져다 놓은 사탕이니 초콜릿 등에 괜스레 웃음이 나온다. 대웅전을 돌아 내려서니 어디선가 맑은 풍경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팔각 형태의 다소 색다른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용문사 관음전觀音殿이다.
맑은풍경 소리가 안내하는 팔각의 관음전
관음전은 용문사를 대표하는 성보인 금동관음보살좌상金銅觀音菩薩坐像을 새롭게 봉안하기 위해 2007년 신축한 건물이다. 고려 후기 14세기 금동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금동관음보살좌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 관음전을 기웃거린다. 살집이 두둑한 얼굴에 화려한 목걸이 장식을 한 보살상은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앉아 있다. 왼쪽 가슴에서 밖으로 드러나는 긴 삼각형 모양의 내의 장식과 화려한 조각이 눈에 띈다. 관음보살이 입은 모양이 다른 상에 비해 좀 더 세밀하게 표현된 것 같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그 모습을 지켜와 오늘날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다.
02. 2006년 12월 4일 등록문화재 제296호 지정된 구둔역. 70여년 이곳을 통과하던 중앙선 열차는 2012년 새로 만들어진 구둔역으로 옮겨가고 옛 구둔역은 추억의 간이역으로 남았다.
03. 크기 에서부터 시선을 압도하는 용문사 은행나무.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의 마의태자가 망국의 한을 품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던 길에 심은 것이라고 전한다.
잘 보전된 정지국사 부도와 비
경내를 벗어나 한참을 걷자니 자그마한 사리탑들이 나선다. 설명을 읽어보니 정지국사正智國師부도다. 이 부도와 비는 고려 말 중국 연경에서 수학한 후 깊은 산에 숨어 깨달음을 얻고자 했던 유학승, 정지국사의 것이다.
보물 제531호로 지정된 부도와 비는 비교적 잘 보전되어 조선 초기 부도 연구의 중요자료가 되었다. 여러 개의 장대석으로 탑구塔區를 마련하고 그 중앙에 건립했다. 지대석과 하대석은 방형으로 되어 있으나 상태석과 탑신부는 8각으로 되어 있어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을 따르고 있다. 장대한 판석을 결구하여 자리잡은 지대석 위에 하대석은 구형으로 돌리고 측면에는 각 모서리에 1판씩, 각 변에 5판씩 연화문蓮華文을 배치하여 모두 24판의 복련覆蓮을 돌렸다. 상대석은 팔각으로 되었는데 각 면에는 상하단에 갑석형과 굽형이 마련되었고 좌우에 우주형이 새겨졌다.
대부산 정상에 오르니 온통 억새밭
용문사를 나서 본격적으로 대부산 정상을 향해 간다. 농익은 색깔로 생의 마지막을 꽃피우다 스러져버린 나뭇잎들이 비포장 산길에 비단을 깔아 겨울을 반긴다. 서두를 것도 없이한발한발올라가보니 호젓한 억새 군락이 눈에 펼쳐진다. 대부산은 억새로도 유명하지만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도 유명하다. 바람 부는 대로 왔다 가는 황금빛 물결의 억새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저 아래에는 영화 관상의 배경이 되었던 설매재가 있다지만 오늘의 마지막 종착지 구둔역이 아직 남아 있기에 그대로 걸음을 재촉한다.
세월의 흔적이 남은 구둔역九屯驛
구둔역은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나와 유명세를 탄 곳이다. 영화에서의 느낌이 남아서였을까? 첫인상부터 왠지 낯설지가 않다. 폐역이 된지는 이제 일년여, 70여년 이곳을 통과하던 중앙선 열차는 2012년 새로 만들어진 구둔역으로 옮겨가고옛구둔역(석불역과 매곡역 사이)은 추억의 간이역으로 남았다.
구둔역의 이름은 임진왜란 때 이 지역 높은 봉우리에 아홉 개의 진지를 구축했다고 해서 얻어진 이름이란다. 아홉 개의 진지라니… 그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을까 짐작이 가지만 지금은 도리어 너무 한산한 느낌이다. 기차 역사로 들어가 본다. 가고 올 기차는 없는데 예전 대합실의 기차 시간표는 그대로 붙어 있다.
<건축학개론> 의 주인공들이 하듯 아슬아슬 위태롭게 철길을 걸어본다. 아쉽게도 철로는 얼마 가지 않아 끊겨 있었다. 역사의 한 페이지가 또 이렇게 사라져가는구나 싶어 괜히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순간 눈을 들어 먼 산을 보니 용문사부터 대부산, 구둔역까지의 여정이 한 눈에 보인다. 구구절절한 이야기와 야사가 전해오는 역사 유적지. 산을 보고 있노라니 그 역사의 장면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았다.
  출처 : 문화재청홈페이지   글. 신지선 사진. 김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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