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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를 위한 장소, 쉼을 위한 집 별장
15-04-07 09:35

왜인들의 휴양처

사람의 삶을 담는 주택이란 비바람과 홍수에 대비해야 하고,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에는 서늘해야 한다. 이처럼 매일의 일상생활을 담으면서도, 안전하고 살기에 편한 집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쉼을 위한 기능으로서의 별장은 주택이 지닌 기능과는 달리, 입지선정 및 건축 구성면에서 차이를 나타낸다. 별장이란 휴양을 위하여 집 말고 경치 좋은 터전을 골라 따로 마련한 집을 뜻하는 것으로, 조선시대에는 별서, 별저, 별업, 별제 등으로 불렸으며, 주인의 식견에 따라 집에 당堂·정亭·재齋·와窩·정사精舍·여廬·전廛·암庵 등의 글자를 넣어서 당호堂號를 짓기도 하였다.

근대기 이 땅에 들어 온 서구인들은 처음에는 기존의 전통적인 한옥에 기거하다가, 문물의 이입이 용이해지면서, 주거기능과 업무 및 상행위를 함께 하는 공관, 상관 및 상점건물을 지었으며, 자신들만의 거처인 순수한 주택 용도의 저택을 신축하였다. 초창기 이들 대규모 저택이 휴양처로서의 성격을 지닌 빌라형 외인주택, 즉 별장이었다.

이들 별장은 주택의 기능 중 휴양이 우선이고 가사노동은 부차적이었다. 주로 여름만을 위한 건물로, 설비시설이 구비되지 않았으며, 외장은 몹시 장식적인 경향을 띠고 있었다. 별장의 특징으로 나타난 격식格式의 상징인 접객공간(응접실, 혹은 홀)은 일상생활이 아닌 연회 및 알현 장소로 받아들여지면서 정부의 고관 및 귀족들의 주택에 영향을 끼쳤으며, 소개된 여러 가지 실내 생활용품 중 침대, 소파 및 의자 등은 주택의 창 모양과 크기를 달리하여 주택의 외관상 변화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사교와 알현의 장소-부와 권위의 상징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 서구의 별장형 주택으로는 인천 외국인거류지내에 세워진 세창양행 사택을 들 수 있다. 개항 직후 응봉산鷹峰山 산마루에 자리 잡은 이 건물은 세창양행 개설 준비 차 온 세 청년의 숙소로, 이후 세워진 인천각仁川閣과 같이 화려한 멋은 없어 보이나, 소박하고 중후한 모습을 지니면서 무성한 정원을 가지고 있었다. 높고 네모난 전망대를 두고 있는 것이 별장으로서의 특징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본격적인 서구식 별장으로, 인천 숭의동 우각현牛角峴(쇠뿔고개)의 ‘알렌 별장’을 들 수 있다. 시내로부터 뚝 떨어진 몹시 호젓한 곳을 별장 대지로 선택한 것에 의구심이 가나, 경인철도가 부설되면서 푸른 잔솔밭이 있고, 비단결같이 고운 잔디밭이 유독 눈에 띄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나의 모퉁이에 둥근 원통 모양의 탑으로 쌓아 올려서 작은 원추 모양의 지붕이 들씌워져 있어 매우 이색적이다. 아래층에 식당과 응접실, 위층에 침실과 서재 등이 있었음직하다.

인천 항구의 또 다른 별장으로 영국인 제임스 존스턴의 인천각仁川閣을 들 수 있다. 이 건물은 1905년에 신축된 것으로, 일찍이 인천 항구의 랜드마크로 불리어 왔다고 한다. 건축설계와 내부 디자인은 상해에서 독일인 외국인구락부를 건축한 바 있는 로즈케겔Rothkegel이 한 것으로 두 건물이 서로 유사하다.

아름다운 다각형 지붕은 새빨간 기와로 마감되었으며, 복잡한 굴곡의 하얀 벽면과 구석구석 오밀조밀한 디테일은 건축미의 극치를 보여줬다고 한다. 이 건물은 발전시설과 더불어 우물로부터 옥상의 커다란 탱크로 물을 끌어올리는 펌프가 있었으며, 여름 한철에 이용하는 것으로 난방시설과 스토브 장치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홀, 식당 및 계단실의 아름다운 목조 조각으로도 유명하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서구인들의 별장을 모방한 한국 관료들의 별장으로는 이준 저택과 윤덕영 씨 별장이 있다. 사적 제257호인 이준 저택은 운현궁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현관 입구와 중앙의 돔 첨탑을 중심으로 정면 발코니 상부의 피라미드(맨사드)형 지붕 2개가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어 궁정의 느낌을 살리고 있다.

옥인동의 옛 송석원에 위치하였던 윤덕영 씨의 별장에는 커다란 한옥들 외에도, ‘한양의 아방궁’이라 부르는 양식건물인 벽수산장이 있었다. 벽수산장은 석재 2층 건물로, 커다란 지붕 및 현관과 베란다의 난간 기둥, 커다란 지붕 등의 세부장식으로 이준 저택보다 훨씬 자유스런 구성을 취하였다. 서울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옥인동 위쪽에 자리한 서양풍의 건물은 1966년 4월 국제연합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 본부로 사용될 당시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들 별장들이 입지한 지역의 가장 높은 지대는 전망이 트여 경치가 가장 좋은 위치이기도 하며, 동시에 주변 어디에서나 잘 보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당시의 서구인들은 자신의 기거처 선정에 있어서, 성시城市나 전망 좋은 높은 언덕이나 구릉지, 거점도시인 성시로부터 멀지 않은 곳,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넓은 대지를 구입할 수 있는 곳, 그리고 건축의 인지도가 높은 권위적 위상이나 종교적 상징을 드러낼 수 있는 곳 등을 선호하였다.


쉼을 위한 집-전통한옥과 벽돌 건물이 어우러진 별장

근대기 서구인들의 부와 권위의 상징인 별장은 사교 활동과 알현의 장소로 이용되기도 하였지만, 별장의 고유기능은 삶과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을 되돌아보거나,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면서 사색하는 쉼을 위한 공간이었다.

입지 선정에 있어서도 서구인들이 선호한 산과 언덕의 정상과 달리 산기슭이라든가, 계곡, 숲속 등 빼어난 경관뿐만 아니라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쉴 수 있는 장소를 더욱 애호하였다. 풍류를 즐기면서 자신의 철학적 사고를 키워 간 예전의 선친들이 정자亭子라든가 정사精舍, 강학소講學所와 서원書院의 입지를 선택하는 것처럼 외부에서 눈에 잘 안 띄는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 별장의 입지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였다.

대표적인 사례로서 서울 인왕산 기슭, 창의문에서 홍지문 및 탕춘대성으로 이어지는 생태문화길 주변 경치 좋은 곳의 별장들이 있다. 창의문 고개 너머 왼쪽에 있는 계곡의 경사진 언덕에 위치한 서울시 민속문화재 제12호인 반계 윤옹렬 별장은 2층 벽돌조 건물과 한옥이 함께 입지하여 있고, 인근 홍지동 계곡에 위치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23호인 ‘대원군 별장’인 석파정별당 역시 전벽돌로 쌓은 측면의 박공벽, 원형과 반원형 창, 그리고 난간 등의 건축요소를 갖추고 있다.

인근 홍지문과 탕춘대성에 위치한 서울시 등록문화재 제87호인 홍지동 이광수 별장터는 목조와 벽돌조가 혼합된 기와집으로, 전망 좋은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어 전면부는 2층 구성을 하고, 후면부는 1층 구성으로 된 ‘ㄷ’자형의 공간구성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경관이 수려한 성북동 서쪽 골짜기 주변으로도 별장 면모를 갖춘 서울시 민속자료 제10호인 성북동 이종석 별장이외에 심우장 등 많은 문화재가 산재하여 있다.

이곳의 별장 건물들은 입지적인 측면에서 자신의 부와 권위를 드러내기 위하여 높은 지대를 선호한 서양인들과 달리 산기슭이나 언덕배기, 계곡이나 숲속, 그리고 도성 외곽의 공기 좋고, 물 맑고, 조용하고, 한가로운 곳에 위치하였으며, 건축적인 면에서는 목구조인 전통한옥과 서구식 벽돌 건물을 함께 두면서 여름뿐 아니라 겨울에도 쉼을 위한 집으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출처 : 문화재청홈페이지  글·김태영 청주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사진·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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