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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 최고의 영양식 토란
15-04-07 15:26

 
지방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토란국은 송편과 함께 추석을 대표하는 음식이다. 대부분 평소에는 토란을 많이 먹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추석이 되면 반드시 토란으로 국을 끓이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기원전 206년, 항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유방이 한(漢)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약 200년 후, 한나라 신하였던 왕망이 반란을 일으켜 신(新)을 건국해 14년 동안 존속했다. 유방의 후손인 유수가 반란군을 진압하고 다시 한나라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인데 그래서 한나라는 왕망을 전후로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방금 말한 것처럼 후한을 일으킨 유수가 바로 광무제다. 삼국지에 나오는 유비의 한참 할아버지뻘 되는 인물이다.

 광무제가 반란군을 진압하겠다며 군사를 일으켰지만 처음에는 왕망에게 패해 쫓기는 신세가 됐다. 급기야는 산속까지 도망쳐 결국 포위를 당했는데 마침 양식까지 모두 떨어져 병사들이 쫄쫄 굶는 신세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왕망은 이 기회에 숲 속에 숨은 광무제 군사를 섬멸하겠다며 산에다 불을 질러 화공을 펼쳤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면서 산불이 꺼졌고 흙속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캐어 보니 땅속에 묻혀 있던 토란이 산불 때문에 마침 알맞게 익어 풍기는 냄새였다. 토란을 캐어 먹고 배고픔을 면한 광무제의 군사들은 사기가 올라 왕망을 공격했고,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이날이 바로 음력으로 8월 15일, 추석이었다. 훗날 황제가 된 광무제 유수는 토란 덕분에 전쟁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해마다 중추절이 되면 군사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토란을 먹도록 했다. 그리고 한나라 때의 이런 전통이 민간에게도 전해져 추석날이면 토란국을 먹는 것이 풍습이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 사람들도 추석이면 우리처럼 토란을 먹을까? 모두가 토란을 먹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 남부지역에서는 우리처럼 추석날 토란을 먹는다.

 도대체 추석날 먹는 토란을 놓고 왜 이런 이야기가 생겨났을까? 그 이유를 또 다른 전설에서 짐작할 수 있다.

 옛날 어느 절에 이상한 스님이 한 명 살고 있었다. 해마다 절 주변의 밭에다 온 힘을 다해 토란을 잔뜩 심어 많은 수확을 했다. 그런데 거둔 수확을 삶아서 절구에 빻더니 삶은 토란 반죽으로 벽돌을 만들어 절 주변에 담을 쌓는 것이었다.

 이런 괴팍한 중을 보고 같은 절의 중들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상한 중이라고, 정신이 돌아버린 것 같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던 어느 해, 난리가 났다. 전쟁을 피해 많은 피란민이 사찰로 몰려들었고 절에 보관하고 있던 양식도 곧 바닥이 드러났다. 모두가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을 때 비웃음을 받았던 중이 토란으로 만든 벽돌을 허물었다. 사람들은 토란 벽돌을 다시 삶아 먹으며 굶주림을 면하면서 비로소 그 중의 비범함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조선 시대의 실학서 ‘산림경제(山林經濟)’에 실려 있는 일화로 저자인 홍만선은 이 이야기를 통해 토란의 영양가와 유비무환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니까 백성들이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전쟁에 빗대어 토란의 영양을 강조한 것이다. 토란은 한자로 흙 토(土)자에 계란 란(卵)자를 써서 토란(土卵)이다. 땅속에서 자라는 달걀이라는 뜻이다. 생긴 모양새가 흙 속에 묻혀 있는 계란을 닮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영양이 풍부하다는 의미도 있다.

 옛날 동양에서 토란은 무병장수를 상징했다. 옛 동양화에 토란을 그려 넣거나 각종 장식에 토란 문양을 그려 놓은 이유도 그 때문인데 왜 토란이 무병장수를 의미하게 됐는지 정확한 이유는 전해지지 않지만 아마 토란의 영양가를 인정하고 전쟁이나 흉년이 들어 양식이 떨어졌을 때, 토란만 있으면 굶주림을 면하고 전란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다 보니 옛날 사람들은 지상에 토란보다 더 좋은 음식이 없다고까지 강조했다. 먹을 것이 워낙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도 많은 요즘에는 전혀 공감할 수 없는 소리지만 어쨌든 토란의 가치를 그만큼 높게 여겼다는 뜻이다.

 11세기 중국 시인 소동파는 향기는 용연(龍涎)과 같지만 희기는 더 하얗고 맛은 우유와 같지만 맑기는 더 맑다고 노래했다. 용연은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다는 용의 침을 모아 만든 향료로 하늘나라 신선들이 먹는다는 향신료다. 추석날 먹는 토란국을 놓고 하늘 음식에 버금가는 식품이라고 극찬한 것이다.

 한방에서는 토란이 뱃속의 열을 내리고 위와 장의 운동을 돕는 식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옛날 할머니들은 토란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고 변비도 고친다고 했다. 그러니 떡과 고기를 많이 먹어 배탈이 나기 쉬운 추석날, 토란국을 먹으면 소화를 도우니 명절 음식으로는 제격이다. 과학적으로 추석과 궁합이 잘 맞는 셈이다.

 일주일만 있으면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어서 짚어 본 추석 음식, 토란국 이야기다. 전란을 극복할 만큼 영양도 풍부하고 소화도 잘 된다니 이런 참살이 음식이 따로 없다. <윤덕노 음식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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