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준 100대 사건 중 1위가 무엇인지 아세요?
바로 '금속활자'의 발명이라고 합니다.
미국의 유명 시사 잡지 '라이프'에서 조사한 결과, 1위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이었습니다. 금속활자가 발명되기 전에는 책이 많이 없어서 문화발전에 큰 영향을 행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책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되자, 인류의 문화는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책 속의 지식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 때문이죠.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보다 78년 더 빠른 우리나라의 금속활자를 아시나요? 대표적인 예로 1967년 박병선 박사가 발견한 '백운화상초록불조 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 直指心體要節)'을 들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줄여서 '직지심체요절' 또는 '직지'라고 부릅니다. 직지심체요절은 역대 여러 부처와 고승들의 법어, 대화, 편지 등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서 편찬한 것입니다. 직지심체라는 뜻은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가졌을 때 그 심성이 곧 부처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박병선 박사가 1967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동양 문헌실에서 '직지'를 찾아내기 전까지는 구텐베르크 성경이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였습니다. 박 박사는 직지가 금속활자로 찍어낸 것이란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 금속활자를 직접 찍어보면서 10년간 연구한 끝에 금속활자는 글자체 가장자리에 금속 흔적인 '쇠똥'이 남는다는 사실을 증거로 직지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임을 밝혀냈습니다.
고려에 만들어진 직지는 현재 존재하는 금속활자본 중에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즉 발견되지 않았지만 직지보다 더 많은 역사를 가진 활자본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와 '상정예문(詳定禮文)'입니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고려 고종 26년(1239)에 최이가 이미 간행한 금속활자본을 견본으로 삼아 다시 새긴 것 중에 하나입니다. 책 서문에는 1077년에 오용천용이 지은 글이, 끝부분에서는 1076년에 축황이라는 사람이 판을 새길 때 지은 글이 실려 있습니다. 그 뒤에는 최이가 선종에 있어 '증도가'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전해지지 않자 금속활자본을 거듭 새겨냄으로써 후대에 오래 전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상정예문은 아쉽게도 실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려 인종 때 왕명으로 17명이 고금의 예의를 수집, 고증하여 엮은 50권의 책이라고 합니다. 실물은 존재하지 않지만 이규보가 지은 해동문헌총록에 그에 대한 기록이 있어 미루어 짐작할 따름입니다.
최근, 이 두 권의 책 중 한권의 책의 금속활자가 직지보다 138년 빠르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었는데요, 바로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활자 '증도가자'가 그 주인공입니다. 증도가자(證道歌字)는 증도가에 쓰인 글자(字)라는 뜻입니다.
증도가자는 개인 소장자가 120여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 활자들은 북한 개성에서 출토되어 중국을 거쳐 국내에 들어왔답니다. 지난해 9월 경북대 남권희 교수는 이 활자들의 서체와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서체가 일치한다고 주장하였는데요. 증도가자라고 추정되는 활자들 중 비교적 먹이 많이 남아 있는 일곱자, 佛(불), 悲(비), 大(대), 人(인), 源(원), 醯(혜), 광(胱)을 탄소연대를 측정한 결과 모두 직지보다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 증도가자 금속활자가 직지보다 앞선 활자라고 단언하기는 이릅니다. 서지학계 권위자인 천혜봉 전 성균관대 교수는 "무엇보다 활자의 출처가 정확해야하는데 이 활자들의 출처는 모호하고 주조방법, 글자체 등 기술사적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아, 신중히 고증을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학설이 제기되는 이유는 '우리나라 금속활자의 우수성'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자랑이자, 세계적으로 우수한 우리나라 금속활자. 지금부터 금속활자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금속활자는 구리를 비롯하여 주석, 아연, 납, 철 등이 사용됩니다. 금속활자의 역사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있지만 현재까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위에서 알려드린 남명천화상송증도가에 사용된 증도가자(證道歌字)가 제일 오래된 금속활자라는 것입니다. 증도가자는 고려 말 13세기 초에 제작되었다고 추정합니다.
증도가자를 시작으로 조선후기까지 금속활자는 중앙, 지방에서 널리 사용되어 왔습니다. 널리 사용되어 온 금속활자는 현재까지 제작기법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금속활자를 만드는 방법은 밀랍주조법과 주물사주조법 총 2가지입니다.
금속활자의 제작 방법은 크게 글자본 만들기, 원형 만들기, 주조 작업, 마무리 작업으로 크게 네 번의 과정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밀랍주조법과 주물사주조법은 처음 글자본제작 단계까지는 같습니다. 글자본제작은 말 그대로 글자를 제작한다는 뜻입니다. ①유명 인사나 서예가에게 부탁 ②활자 제작자 등이 직접 자신의 필체로 자본을 선정 ③유명인의 필체로 간행된 서적의 글자를 모방하거나 베끼기도 합니다. 이렇게 선정된 자본은 서적에 따라 필요한 특대자, 대자, 중자, 소자, 특소자 등 종류별로 자본을 제작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다음은 만들어진 글자본으로 금속활자의 원형을 제작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부터 밀랍주조법과 주물사주조법은 차이가 납니다.
먼저 밀랍주조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미리 준비된 밀랍 판에 제작한 자본을 거꾸로 붙입니다. 거꾸로 붙인 자본을 따라서 밀랍을 파내고, 파낸 글자 하나하나를 다듬는 작업을 거쳐 활자 원형을 완성합니다. 마지막 사진을 보시면 하나하나 떼어낸 활자 원형을 하나의 밀랍 봉에 붙이고 있습니다. 이는 어미자 가지라고 합니다. 어미자 가지를 만드는 이유는 활자를 만들 때 쇳물이 흘러 들어갈 수 있는 홈길을 내놓기 위함입니다.
주물사주조법은 밀랍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이용합니다. 글씨크기에 맞는 각목을 준비하고 글자본을 각목에 붙여 나무를 파내서 밀랍주조법과 같이 하나하나 활자 원형을 정리합니다. 주물사주조법 역시 나무막대기에 활자 원형을 붙입니다. 이는 밀랍주조법과 같은 원리입니다.
1,2 단계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본격적으로 활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번에도 밀랍주조법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고온에 견딜 수 있는 목재 또는 금속재로 어미자 가지가 들어갈 수 있도록 위, 아래가 뚫린 주형틀을 만듭니다. 평평한 목재나 철판 위에 주형틀을 놓고 어미자 가지를 넣은 후 도자기를 만드는 흙과 질그릇을 만드는 흙 반죽 또는 석고를 섞어 만든 '주물토'를 채웁니다. 이 때 쇳물을 부어 넣을 입고와 쇳물이 잘 흘러나올 수 있도록 구멍을 놓아야합니다.
어미자 가지가 들어 있는 흙이 굳으면 흙을 불에 구워 밀랍을 녹여냅니다. 그럼 굳은 흙 속에 밀랍이 있던 홈이 있겠죠? 그 속으로 녹인 금속을 넣습니다. 금속을 식힌 후, 흙을 깨어보면 아래, 중간과 오른쪽 사진과 같은 금속 활자가 나옵니다. 그리고 활자를 하나하나 떼어내서 정리하면, 밀랍주조법으로 만들어진 금속활자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주물사주조법 역시 1,2단계를 거친 활자 원형을 금속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요. 밀랍주조법과 흙을 사용하는 것 같지만 약간 다르답니다. 흙 반죽을 사용하는 밀랍주조법과 달리 주물사주조법은 도자기를 만드는 흙과 질그릇을 만드는 흙 및 모래를 준비하고 이들을 잘 섞어 곱게 채질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형틀이 필요한데요, 주형틀은 앞, 뒤가 뚫린 틀이 아니라, 암틀과 수틀 총 2개로 이루어진 틀을 사용합니다. 암틀과 수틀에 주물토를 채워 넣은 후, 흙으로 찬 암틀에 만들어 둔 활자 원형을 찍습니다. 그럼 흙 위에는 글자 모양이 남게 되는거죠~
완성된 활자들은 마무리 작업을 거치게 됩니다. 붙여져 있던 활자를 자르고 다듬어 글자마다 보관하는 것을 끝으로 금속활자 작업은 끝이 나게 됩니다.
밀랍주조법과 주물사주조법의 차이는 만드는 과정 그리고 사용되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밀랍주조법은 초기에 사용되었던 방식이고 주물사주조법은 조선시대 초조갑인자(세종 16년, 1434년) 이후 보편된 방법입니다.
금속활자를 만드는 기술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로 지정 된 금속활자장(金屬活字匠)이 보유하고 있습니다. 금속활자를 만드는 기술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전통공예기술입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 서양문화가 전래되면서 금속활자 인쇄술이 약 100여년 간 단절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故오국진 금속활자장의 기능 보유자가 잊혀졌던 전통기법을 복원하고 전수하여 오늘날까지 그 기법을 이어올 수 있었습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준 100대 사건 중 1위인 금속활자의 제작, 우리나라 역시 금속활자의 발명으로 많은 지식들이 사람들에게 퍼졌습니다. 때문에 많은 인쇄물들이 남아있어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우수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 우리가 잘 알고 지켜야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3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구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