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내에서 문양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경복궁은 기본적으로 3구역으로 나눠져 있는데 신하와 왕이 공식적인 행사나 업무를 보는 외조, 왕과 가족들의 개인적인 생활공간인 내조, 그리고 휴식 및 행사의 공간인 후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다. 이러한 공간적인 구분을 통하여 문양 역시 그 공간과 맞는 의미를 지닌 문양을 배치하였습다.
외전 - 왕과 신하의 만남, 권위의 공간
외조는 광화문부터 사정전에 이르는 공간을 말합니다. 이곳에는 궐내각사라 하여 궁궐내의 관청과 왕과 신하가 공식적으로 만나는 근정전과 사정전과 같은 건물이 있는 곳으로 근정전은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공간인 만큼 문양 역시도 권력을 나타내는 문양과 왕실의 안녕을 기원하는 벽사의 문양이 대부분입니다.
경복궁 영제교의 천록
근정전까지 이르는 공간인 흥례문에는 영제교이라는 다리가 있는데 이것은 배산임수라는 명당을 위해 만들기 위한 명당수의 역할을 합니다. 그 다리의 양옆에는 천록이라는 상상의 동물이 있는데 바로 명당수로 들어오는 악귀를 막는 역할을 하고 있고, 영제교 난간의 엄지기둥에서는 용을 발견할 수 있는데 용은 민간에서는 물을 다스리는 동물로 여겨 금천의 난간에 장식된 것으로 보입니다.
영제교 난간의 용
근정전 영역으로 들어서면 왕의 권위를 나타내는 문양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근정전은 2층으로 된 월대 위에 2층으로 된 건물로, 월대에는 난간이 둘러져 있어 난간 사이의 엄지기둥에 12지신과 사신이 방향별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정면의 계단에는 봉황과 용과 같은 상상의 동물들로 장식이 되어있습니다. 정면 계단 어도부분에는 비스듬히 돌이 있는데 이 안에는 상상의 동물인 봉황이 있습니다. 봉황은 수컷인 봉(鳳)과 암컷인 황(凰)이 합쳐진 말로 용과 학이 연애를 하여 낳았다는 상상의 새입니다. 봉황은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를 하고 있으며, 태평성대를 나타내기 때문에 궁궐 내에 많은 장식으로 쓰였습니다. 또한 살아있는 것은 먹지 않고, 오동나무에만 앉는다고 하여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선비들은 마당에 오동나무를 심었습니다.
근정전 월대의 답도와 서수
계단에 올라서면 난간의 사이의 엄지기둥 끝과 난간 모서리마다 십이지신상과 사신 및 상서러운 동물을 배치하여 벽사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십이지신 중에는 빠진 것들이 있는데 바로 호랑이와 용, 개, 돼지입니다. 호랑이와 용은 사신에 포함이 되어 빠져있고, 개와 돼지는 천하여 빠졌다는 의견과 순서대로 넣던 중 마지막이라서 빠졌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월대의 아래 모서리에는 해태로 보이는 한 쌍의 동물과 그것의 새끼가 어미의 젖을 찾는 조각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궁궐 내의 특이한 동물이 조각이 되어 있으면 해태라고 하는데 보통 이름이 없는 동물은 상서로운 동물이라는 뜻의 서수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해태 역시 자기만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상상의 동물로 원래는 해치라고 불리었습니다. 해치는 뿔이 하나 밖에 없으며 죄를 지은 사람을 찾아내는 재주가 있는데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올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고, 논란을 벌이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물어뜯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의의 동물로 알려져 있어, 관리의 비리를 알아내는 의정부의 관리의 흉배에는 해치를 넣었고, 머리에 쓰는 관 역시 해치관을 썼습니다. 또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 앞쪽에 해치상을 두었습니다.
근정전 안으로 들어가면 가운데에는 높은 단에 나무로 된 병풍(삼곡병) 앞에 임금이 앉는 용상이 놓여 있습니다. 그 뒤에는 만원의 세종대왕 뒤에 그려진 일월오악도가 있습니다. 5개의 봉우리와 해와 달, 소나무, 폭포, 파도가 좌우 대칭으로 그려져 있는데, 이 그림은 중국에서 유래하며 정식명칭은 일월곤륜도입니다. 곤륜이란 중국 전설에 황하의 근원이 된다는 산으로 그 산의 5봉우리를 형상화 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그림은 우리나라의 전 국토와 바다, 강을 다스린다는 의미입니다. 이 병풍에는 비밀이 있는데 바로 삼곡병 바로 뒤에 병풍에 문이 달려 있다. 이것은 왕이 지나가는 통로로 생각되며 왕이 나올 때나 들어갈 때 더욱 극적인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근정전 천장의 칠조룡
근정전의 양쪽 문 쪽에서 천장을 바라보면 움푹 들어간 부분에 황룡 두 마리가 여의주를 희롱하는 쌍룡희주가 조각이 되어있습니다. 황룡은 중앙을 나타내며 만물과 모든 짐승을 다스리며 변화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머리는 뱀, 뿔은 사슴, 눈은 귀신, 귀는 소, 목은 뱀, 배는 조개, 비닐은 잉어, 발톱은 매, 발바닥은 호랑이를 닮았고, 비닐은 81개로 99의 양수를 갖고 있고, 닮은 동물 역시 9가지여서 양의 끝을 나타냅니다.
용에는 수많은 종류가 있고, 형태와 성질도 다양합니다. 비늘이 있는 교룡, 날개가 있는 응룡, 빛이 붉고 뿔이 있는 새끼용 규룡, 빛이 노랗고 뿔이 없는 이룡, 승천하지 못한 반룡 등이 있습니다. 또한 용은 아홉의 자식이 있는데 이것이 용생구자로, 아홉 자식들은 모두 각각의 특징이 있는데, 무거운 것을 지기 좋아하여 비석 밑에 세기는 비희, 높은 곳을 좋아하여 건물 위에 올리는 이문, 포뢰라는 것은 소리 지르는 것을 좋아하여 종위에 올리며 포뢰는 고래를 무서워하여 고래가 치면 번번이 울어 고래모양으로 당을 만들어 종을 칩니다. 호랑이를 닮은 폐안은 위력이 있어 감옥 문에 세기고, 도철은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여 솥이나 제기에 쓰며, 공복은 물을 좋아하여 다리의 기둥에 세기며, 죽이는 것을 좋아하는 애자는 칼손잡이에 새기고, 연기와 불을 좋아하는 산예는 사자와 닮았고, 소라를 닮은 초도는 닫기를 좋아하여 문고리에 새긴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과거부터 용은 왕을 상징하여 왕의 눈물은 용루, 옷은 용포, 얼굴은 용안 등으로 불립니다. 근정전 천장의 용은 발톱이 7개인 칠조룡으로 보통 황제는 오조룡, 왕은 사조룡이여서 조선시대에는 임금은 사조룡을 썼습니다. 하지만 근정전은 오조룡도 아닌 칠조룡으로 되어 있는데 이 것에 대해 여러 의견 있습니다. 근정전 수리 당시 확인한 결과 근정전이 처음 지어질 때부터 수리되지 않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흥선대원군이 처음부터 고종을 황제로 꿈꿨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근정전 뒤의 사정전 안벽에는 운룡도가 있는데, 본래 벽화였으나 현재는 천으로 된 모사본이 걸려 있습니다. 그림이 걸려있는 사정전은 왕이 평소 신하를 만나 집무를 하는 곳으로 운룡도는 왕과 신하의 관계를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내전 - 왕과 가족들의 생활공간
내전은 평소 왕과 왕비 등 왕의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왕의 침전인 강녕전,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 대왕비의 생활공간이 자경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중 여성의 공간인 교태전과 자경전은 근정전과 같은 권위의 문양이 아닌 다산과 장수를 나타내는 문양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보물 제811호 경복궁 아미산 굴뚝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뒤에는 아미산이라는 화계로 된 나지막한 산이 있습니다. 아미산은 경회루 연못을 파고 난 흙으로 만든 곳으로 화계에는 다양한 꽃과 나무를 심어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 교태전의 온돌의 연기를 빼는 굴뚝 역시 8각형의 모양으로 만들어 굴뚝으로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아미산의 굴뚝은 보물로 지정이 되어 있고, 8각형으로 된 몸체위에 기와로 된 지붕을 올리고, 기와 위에는 네모난 작은 집에 구멍이 뚫려있어 그쪽으로 연기가 빠져나가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각 면에는 제일위에는 인동당초와 중간에는 판으로 된 회그림에 대나무, 소나무, 매화, 복숭아, 모란과 같은 그림을 넣고 위와 아래에 박쥐, 학, 불가사리 등을 배치하였습니다.
회그림 위아래에 있는 동물 중 좌우대칭의 불가사리가 보입니다. 불가사리는 쇠를 먹고 살며 악몽과 사악한 기운을 쫓아낸다고 합니다. 곰의 몸, 무소의 눈, 코끼리의 코, 소의 꼬리, 범의 다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보통 코끼리로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다른 동물로는 학이 있는데 학은 십장생 중 하나로 장수를 나타내는 문양으로 쓰였고, 박쥐는 한자로 복(蝠)으로 복(福)과 발음이 같아 여러 곳에 장식문양으로 쓰였습니다.
교태전을 나가기 전에 담장에는 얼음이 갈라진 빙렬문양과 거북이의 등껍질 문양인 귀갑문양이 있습니다. 빙렬은 창덕궁의 낙선재에도 찾아 볼 수 잇는데 낙선재의 빙렬은 부엌 뒤에 새겨 화재가 나는 것을 방지를 기원하는 의미였습니다. 교태전의 꽃담에는 빙렬의 사이사이에 꽃등을 두어 더욱 아름답게 꾸며졌습니다.
귀갑문은 거북이의 등껍질을 나타낸 것인데 예로부터 거북이의 등껍질은 미래를 점치는 용도로 쓰였고, 거북이는 십장생 중 하나로 장수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동물이었습니다.
경복궁 내에 가장 많은 문양이 있는 곳은 대비의 생활 공간인 자경전으로 자경전의 서쪽 담에는 아미산의 굴뚝과 마찬가지로 대나무, 복숭아, 석류, 매화, 국화와 같은 식물의 문양과 수(壽), 복(福), 강(彊), 녕(寧), 장(張)과 같은 문자 문양, 만(卍)자문과 같은 기하학문양등으로 담이 꾸며져 있습니다.
만(卍)자문은 부처의 가슴에 길상의 상징물로 표시 되던 것으로 태양, 번개, 물, 불의 운동을 나타냈다는 것과 북두칠성이 회전하는 모습에서 기원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중국에서 측천무후때 정식 문자로 채택되어 만으로 읽혀지고, 길상과 만복이 집결됐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그리고 만자의 사방 끝이 계속 이어지면서 각종 문양을 형상화 하는데 이것은 장수와 길상이 끊임없이 이어져 최대의 길상을 나타냅니다. 그 외의 글자문인 수(壽), 복(福), 강(彊), 녕(寧), 장(張)은 장수와 복, 건강과 굳셈과 배품 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경전 꽃담
나머지 식물 문양은 그 당시 도화서의 최고 화공들이 그림을 그려 그 그림을 전돌로 구워 완성을 한 것으로 그 그림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사군자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로 사계절을 나타내며, 고결함을 상징하여 사대부들이 많이 애호하는 식물으로, 자경전에는 난초를 제외한 매화, 국화, 대나무가 있습니다.
매화는 이른 봄에 홀로 피어 봄의 소식을 전하고 맑은 향기와 우아한 신선의 운치가 있어 순결과 절개의 상징으로 널리 애호었습니다. 매서운 추위에서 꿋꿋이 피는 것을 고상한 품격에 비유하기도 하며, 겨울에는 죽은 것 같으나 다음해에 다시 꽃이 피는 속성을 지녀 장수의 상징물로 여겼습니다. 대나무와 함께 그려 부부를 상징하여 매화는 아내를, 대나무는 남편을 상징합니다.
국화는 고결한 품격의 상징이고 늦은 서리를 견디며 청초한 모습을 잃지 않아 길상의 징조와 상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은군자, 은일화, 영초, 옹초, 천대견초와 같은 별칭이 많아 고상함, 장수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대나무는 강하고 유연하고, 사계절 색이 변치 않기 때문에 군자의 절개의 상징으로 애호되었던 식물로, 세속적인 의미로는 수(壽)를 상징하는 바위와 함께 그려 축수의 이미를 나타내었고, 대나무가 타는 소리로 귀신을 쫓았다고 하여 벽사의 의미도 있습니다.
삼다(三多)
삼다는 복숭아, 석류, 불수감을 말하는 것으로 자경전 담에는 복숭아와 석류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수(壽), 다남자(多男子), 복(福)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중 복숭아는 서왕모의 복숭아로 칭하기도 하는데 곤륜산에 사는 선녀인 서왕모가 가꾸었다는 천도(天桃)는 3천년 만에 한번 꽃이 피고, 3천년 만에 열매를 맺는다고 하고, 서유기의 손오공과 3천 갑자 동박삭도 이 복숭아를 훔쳐 먹은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복숭아는 장수를 축원하는 잔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과일이 되었습니다.
석류는 씨가 많아 많은 자손을 의미하고 불로초와 함께 그려질 경우에는 백자장생(百子長生)을 의미합니다.
위에 것 외에도 모란이 있는데 모란은 작약이라고도 하며 화중지왕이라 하여 꽃 중에 왕으로 꼽히며, 모란꽃은 부귀를 나태는 꽃으로 장미와 함께 배치하여 부귀장춘, 수석, 복숭아와 함께 장명부귀, 수선화와 함께하여 신선부귀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자경전의 뒤쪽에는 교태전의 굴뚝과 마찬가지로 보물로 지정된 굴뚝이 있습니다. 십장생 굴뚝이라고 하며, 대비가 사는 곳이라서 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을 넣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십장생은 보통 십장생인 해, 달, 산, 물, 구름, 돌, 소나무, 거북, 사슴, 학, 대나무, 불로초, 복숭아와 다르게 달과 산이 빠지고 대나무, 연꽃등이 들어가 있다. 십장생의 그림 아래 양쪽에는 불가사리와 위쪽에는 학과 서수가 있고, 굴뚝 양옆에는 박쥐와 인동당초를 넣어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대비의 장수를 바라는 의미로 새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2기 문화재청 대학생 블로그기자단 홍상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