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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진 사람은 친척을 사랑할 뿐이다
15-07-05 17:33

어진 사람은 친척을 사랑할 뿐이다

『갱장록』의 여섯째 편은 친척과 화목하게 지내는 돈친(敦親)이다. 훌륭한 국왕이 되려면 선왕의 좋은 행적을 본받고, 집안사람을 잘 다스리며, 왕위를 계승할 자손을 제대로 가르쳐야 했다. 국왕은 자기 때문에 왕이 되지 못한 친척과 화목하게 지내야 했다. 여기에는 자신에게 반기를 든 친척도 포함되었다.
태조는 친척들과 화목하게 지냈다. 아우인 이화와는 항상 함께 살았고 이화를 낳은 정안옹주를 개성의 집에 모시고 봉양했다. 정안옹주는 태조의 부친인 환조(이자춘)의 노비 출신이었다. 환조가 사망하자 그 조카인 이천계가 누이인 강우의 아내와 모의하여 난을 일으키려 했지만 태조는 그들을 처음처럼 대하였다.

태종과 세종은 종친들을 관리할 관청을 설치했다. 태종은 종친부를 설치하고 태조의 후사가 아니어서 군으로 봉해지지 못한 종친과 외척을 소속시켰다. 어떤 사람이 직무가 없는 사람을 위한 관직을 만든다고 비판하자 태종이 대답했다. ‘훌륭하지 못한 친척을 관리로 임명했다가 죄에 빠졌다고 하자. 그를 사면해주면 법을 폐지하게 되고, 죄를 논하면 은혜를 해치게 된다. 내가 종친부를 둔 것은 친척을 친척으로 대우하면서 법을 폐지하거나 은혜를 해치지 않으려는 것이다.’
세종은 종부시와 종학(宗學)을 설치했다. 종친이 잘못을 저지르면 종부시에서 다스리고, 학문이 뛰어난 사람을 종학 박사로 임명하여 종친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이때부터 왕실의 종친들은 예제를 준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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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과 효종은 각별한 형제애를 보였다. 성종은 형 월산대군이 사망하자 오랫동안 조정의 일을 보지 않았고 국왕이 행차할 때 울리는 고취(鼓吹)까지 폐지시켰다. 지평 유경이 상복을 1년 동안 입는 대상은 대부(大夫)에게만 해당한다며 이를 반대했다. 성종은 ‘조정의 일을 보라는 것은 그대로 따르겠다. 그러나 대신이 죽어도 음악을 듣지 않는데 친형의 관이 아직 빈소에 있는데 내가 어떻게 고취를 듣겠느냐?’고 대답했다.

효종은 아우인 인평대군과 친하게 지냈다. 어릴 때 같은 이불을 덮고 지냈고, 왕이 된 후에도 오랫동안 떨어져 있지 않고 병이 있으면 이내 가서 보았다. 하루는 효종이 인평대군의 병이 심하다는소식을 듣자마자 작은 가마를 타고 나가는 바람에 근신들은 맨발로 왕을 따라가야 했다.

조선의 국왕 중에는 세자나 왕위에서 밀려난 형제를 예우한 사람이 많았다. 세종은 세자에서 밀려난 형 양녕대군을 각별히 돌보았다. 김종서가 양녕대군의 비리를 처벌하자고 하자 세종이 대답했다. ‘양녕대군이 여자관계가 문란하고 소인배를 가까이 한 잘못 때문에 태종께서 물러나게 했다.

그러나 천륜으로 보면 나는 양녕대군의 자리에 올라 국왕이 되었다. 보통 사람도 형제 간에는 나쁜 점을 가려주고 좋은 점을 드러내는데 나는 한 나라의 주인이 되어 보통 사람만도 못하겠는가?’중종과 인조는 왕위에서 밀려난 선왕을 예우했다.
중종은 연산군을 강화도 교동에 안치한 후 ‘내가 전왕에게 의리로는 군신이요 정으로는 형제이다.

지금 날씨가 점점 추워지니 의복과 음식을 보내주라’고 했다. 연산군이 사망하자 중종은 3일 동안 소박한 음식만 먹고 수의를 보내 왕자군의 예로 장사지내게 하였다. 중종은 연산군의 폐비를 친정인 신승선의 집에 옮겨 살게 하고 빈의 예로 대접하였다.
인조는 광해군을 예우하였다. 인조반정이 일어나자 인목대비는 광해군이 종묘사직의 죄인이라며 누차 죽이라고 했다. 인조는 광해군이 무도한 사람이지만 15년간 임금으로 있었기에 불가하다고 말했다. 인조는 광해군이 서울에 있을 때 별도의 집을 택해 거처하게 하고, 사옹원에서 음식을 제공하고, 승정원에서 마음을 다해 보호하게 하였다.
광해군과 폐비가 사망하자 인조는 예조참의를 파견하여 왕자군 일등의 예로 장례를 치르게 했다.

효종은 열여덟 살 때 병자호란을 겪었고 형 소현세자와 함께 심양으로 가서 인질이 되었다. 청나라 사람이 전쟁을 벌일 때 소현세자를 데려가려 하자 효종은 항상 자신이 가겠다고 나섰다. 국왕이 된 효종은 효릉에 행차하는 길에 소현세자의 묘소로 관리를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조금 있다가 효종은 ‘지난 꿈에 본 소현세자의 얼굴은 매우 기뻐했다. 이번 꿈에 만나 직접 제사를 지내지 못한다고 했더니 나의 손을 잡으며 슬퍼하는 기색이 있었다’며 자신이 직접 제사를 지냈다.

국왕은 자신에게 반기를 든 친척까지 보듬어야 했다. 인종은 세자 때 복성군의 일로 중종에게 상소를 올렸다. 복성군은 경빈 박씨의 아들이자 인종의 아우로, 경빈이 복성군을 세자로 만들려 한다는 소문이 돌아 경빈과 함께 죽임을 당했다. 이때 복성군의 누이였던 혜순옹주와 혜정옹주는 작호가 박탈되어 서인이 되었다. 인종은 복성군은 나이가 어려서 이 일을 몰랐고 두 옹주도 나이 어린 여자라 이 일에 간여할 수 없었다고 변호하고, 형제 간에는 친애할 뿐이라는 명분을 들어 옹주의 지위를 회복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중종은 인종의 말에 감동을 받아 두 옹주의 관작을 회복시켜주었다.
인조의 서형인 인성군이 반란 사건에 연루되자 삼사에서 죽이라고 했다. 인조는 인성군을 관동지역으로 내보낸 후 강원감사에게 특별히 편지를 보내 ‘왕자가 궁중에서 성장하여 거처와 음식이 다른 사람과 다르니 관아에 거처를 정하고 자주 살펴보라’고 당부했다.

국왕의 친척은 국왕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면서 잠재적 경쟁자였다. 반정이 일어나면 친척 중에서 새 국왕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국왕이 친척들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왕위를 굳건히 지키는 방법이었다.
 
- 글. 김문식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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