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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략과 충절의 표상, 토끼전
15-07-05 18:40




『별쥬부젼』 국문 필사본, 작자·연대 미상, 국립중앙도서관『토끼전』은 우리 인간 생활을 동물 활동에 빗댄 우화(寓話)이다. 우화는 해학을 통한 웃음을 바탕으로 하여 간접적으로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경계심을 일깨우는 교훈을 지니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토끼전』의 주인공은 토끼와 자라지만, 근원설화인 『삼국사기』 권41에 실린 ‘귀토지설(龜兔之說)’에는 토끼와 거북이로, 근원설화와 소설
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귀토지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라 김춘추(金春秋)가 고구려에 사신으로 갔을 때, 고구려왕은 신라가 점령하고 있는 옛날 고구려 땅을 반환하라고 협박했다. 김춘추가 신하의 입장에서 국토 문제를 대답할 수 없다고 거절하자, 고구려왕은 그를 구금하여 죽이려 했다. 이에 김춘추는 고구려왕의 신임을 받는 신하 선도해(先道解)에게 선물을 보내고 도움을 요청하니, 선도해가 음식을 마련해 김춘수를 찾아와 ‘귀토지설’을 들려주었다.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병에 걸렸는데 토끼 간으로 약을 해야 낫는다는 의원의 말에 용왕이 육지의 토끼를 못 구해 애태우니, 거북이 토끼를 구해오겠다고 아뢰고 육지로 나와 토끼를 만났다. 곧 거북은 바다 가운데의 한 섬에는 아무 걱정 없이편안하게 살 수 있는 낙원이 있다고 꾀었고, 그 말에 속은 토끼를 업고 바다에 떠서 2, 3리쯤 왔다.
토끼를 얻은 거북은 자기 계책의 성공에 마음이 들떠, 간을 내어 용녀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고 이렇게 업고 간다는 말을 털어놓았다. 이때 크게 놀란 토끼는 꾀를 내어 자신은 신명(神明)의 후손이므로 배 속 오장을 꺼내 물에 씻어 넣곤 하는데, 마침 간을 씻어 바위 밑에 두고왔으니 함께 돌아가서 간을 가지고 오자고 했다.
이 말을 믿은 거북은 토끼를 업고 다시 육지로 왔고, 육지에 닿은 순간 토끼는 껑충 뛰어올라 거북을 보고 “이 어리석은 것아, 간 없이 사는 동물이 어디 있더냐?” 하고 비웃으며 달아나니, 거북은 민망하여 말없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 얘기를 들은 김춘추는 고구려왕을 속여, 자신이 돌아가면 신라왕을 잘 설득해 그 땅을 돌려주겠다는 글을 올려서 죽음을 면하고 무사히 귀국했다.
이 설화는 후대 『토끼전』의 핵심 줄거리를 거의 갖추고 있다. 토끼 간을 용궁 세계 어족의 병 치료로 이용한다는 점과 그 약을 얻기 위해 자라와 형상이 유사한 거북이 충성심을 발휘해 육지로 나와서 토끼를 만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이상세계가 바다 가운데 있다는 거짓말로 유혹하여 토끼를 업고 간다는 핵심 내용이 동일하다. 그리고 허황된 감언이설에 속은 사실을 안 토끼가 죽음에 직면하여 기민하게 거북을 다시 속여 육지로 돌아와 달아난다는 희학적(戱謔的)인 계책 내용이 공통적으로 나타나 있다.
조선 중기를 지나면서 다른 판소리들과 함께 이 이야기도 여러 명창들이 각기 조금씩 다른 내용을 구성해 구연했던 것으로 보이며, 19세기 후반에 신재효(申在孝) 선생이 그 표본이 될 만한 이야기를 자신의 판소리 사설집에 실어 지금까지 전해진다. 현재 알려져 있는 소설로는 전주 판각(板刻)의 완판본(完板本) 『토별가(兔鼈歌)』가 1898년에 출간되었으며, 서울 판각의 경판본(京板本) 『토생전(兔生傳)』이 1908년에 출간되었다. 이후 활자본 소설도 여러 서관(書館)에서 각기 이름을 달리하며 출판되었고, 판소리 사설도 여러 명창들의 다양한 바디로 전하는데, 오늘날은 소설보다 판소리사설이 더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토끼전』이 수록된 <중학교 국어 ③>, 천재교육
‘귀토지설’과 후대의 『토끼전』 및 판소리 사설들을 비교해보면 이 이야기는 대체로 3단계로 발전되었다. 그 첫 단계는 설화인 ‘귀토지설’인데, 여기에는 용궁 공간이 구체적으로 설정되지 않았고, 산중 동물들의 회의 내용도 나타나 있지 않으며, 오로지 우화의 본령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교훈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즉 분에 넘치는 허황된 영광을 좇다가 꼬임에 빠져 위험에 처하는 경우를 경계하였고, 절명(絶命)의 위기에 처했을 때 정신 차려 기민하게 대처해 살아남을 방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교훈을 암시하고 있다.
다음 두 번째 단계는 신재효 판소리 사설집의 『토별가』와 완판본 『토별가』의 내용인데, 이 두 편은 제목도 동일하지만 내용 또한 동일한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신재효 판소리 사설집의 내용을 바탕으로 완판본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용궁이라는 곳을 인간 세상처럼 설정하고, 수중 보물로 장식된 용궁과 수족(水族)들을 통솔하는 용왕을 인간 세상의 궁궐과 제왕의 통치 모습에 등치시켰다. 그리고 산속 짐승들의 회합 장
면이 등장하는데, 산중에서도 용궁 세계와 같이 우두머리가 여러 짐승들을 다스리는 것처럼 설정했다. 이때 연장자를 우두머리로 추대하는 과정에서 서로 나이가 많은 증거를 고안해 제시하는 ‘쟁년설화(爭年說話)’가 개입되어, 또 다른 지략의 대결을 벌이면서 흥미를 끈다.
이밖에 용궁 세계의 묘사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점은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성심을 매우 강조했다는 것이다. 자라가 육지로 나오면서 가족들과 이별할 때 그 모친은 토끼를 얻어오지 못하면 살아서 돌아오지 말라고 강조하는가 하면, 그 아내도 집안일은 자신이 책임질 테니 반드시 토끼를 얻어와 충성을 다하라고 당부한다. 이야기의 말미에서도 사람이 자라의 충성과 토끼의 기민한 대
처 능력을 본받지 못하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여, 두 가지를 함께 강조하는 말을 덧붙여놓았다.
한편 결말 부분에 토끼가 자신의 대변을 약이 된다며 칡 잎에 싸서 자라 등에 묶어 주는데 그것으로 용왕의 병이 나아 자라의 충성심도 지켜진다.
 


2014. 6. 23 판소리 기획공연 ‘득음’ 중 남해성 명창의 수궁가 공연


이것은 옛날 어린아이 해열(解熱)에 토끼 똥 삶은 물을 먹이던 습속을 잘 이용한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경판본 『토생전』과 근래 구연되고 있는 판소리 사설의 내용이다. 여기에서는 토끼가 산으로 돌아온 다음 영명(靈明)한 계책으로 죽음의 위기를 모면하는 내용이 첨가되었다. 육지에 내려 좋아하던 토끼가 사람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렸는데, 마침 날아온 쉬파리에게 자신의 등에 쉬를 많이 슬어 썩은 것처럼 보이게 해달라고 부탁해 사람들이 속아 집어던져버려 살아난 이야기가 추가되었다. 또한, 토끼가 독수리에 의해 잡혀갔을 때는 용궁에서 온갖 것이 다 나오는 조화(造化) 주머니를 얻었는데 이것을 바위 밑에 숨겨놓았다고 속여, 굴속으로 뛰어 들어가 죽음을 면한 내용도 덧붙여져 있다.
토끼가 귀엽고 순하며 무서운 이빨과 발톱도 없으면서 뛰어난 지략을 발현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예부터 달나라에서 토끼가 불사약 방아를 찧는다는 전설이 있어 토끼를 달의 정령(精靈), 곧 월정(月精)이라 칭했고, 암토끼는 혼자 달을 바라보고 잉태하여 새끼를 낳기 때문에 눈이 매우 밝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꾀 많고 교활한 토끼는 그의 굴 통로를 셋으로 만들어 위기 때 도망칠 수 있도록 한다는 ‘교토삼혈(狡兔三穴)’ 설화가 옛 전적에 실려 있으며, 토끼털로 붓을 만들기 때문에 선비들은 붓을 토관(兔管)ㆍ토호(兔毫)ㆍ토영(兔穎) 등으로 일컬으며 그에 대한 친근감을 갖고 있었다. 이런 내용이 영특한 토끼 이야기의 바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 글 김현룡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 -    출처 : 한국문화재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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