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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하나 되는 청담(淸談)의 세계, 고기잡이
15-07-06 13:30

어업으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에겐 정말 죄송한 일이지만, 고기를 잡는다는 것은 다소 낭만적이다. 예전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고기잡이 옛 그림을 보면 강태공의 유유자적이 많이 드러난다. 물론 생존을 위한 몸짓도 있다.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1806년경)의 풍속화 <고기잡이>가 그렇다. 어살을 쳐놓고 고기를 잡아 어살 밖으로 건네주고 그것을 받아 커다란 독에 차곡차곡 채워 넣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어부들에겐 참 신나는 순간일 게다. 그런데 그 힘든 일과임에도 <고기잡이> 속 인물들의 표정은 어른 아이할 것 없이 넉넉하기만 하다. 즉석에서 생선 요리가 마무리되길 기다리는 아이들의 표정은 갈매기 떼 날갯짓만큼이나 밝고 편안해 보인다. 그러고 보니, 분명 힘든 노동이지만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 고기잡이인 것 같다. 16세기 이흥효의 산수화나 17세기 이정의 산수화, 18세기 최북의 산수화에는 고기 잡는 사람, 어부가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그림 속 어부들은 고기잡이에 대한 욕심이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저 물을 바라보며 세상을 관조할 뿐이다. 물론 김홍도 그림에서도 과도한 욕심은 드러나지 않는다. 갈매기들을 위해 어살 안에 고기를 남겨두는 여유와 겸허함이 있다. 그런데 이정이나 최북 등이 그린 산수화 속 어부의 모습은 아예 욕심을 초월한 듯 무념무상의 분위기다. 호생관 최북(豪生館 崔北, 1712~1786년경)의 <한강조어도(寒江釣魚圖)>를 보자. 눈 내린 차가운 겨울 강, 언덕 한림(寒林)을 옆에 두고 어부가 배 위에 홀로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다. 낮게 쭈그려 앉은 어부의 마음이 눈 내린 겨울 강처럼 투명하고 차갑다. 거기 세속의 풍진(風塵)이 끼어들 틈은 없다. 김홍도나 최북의 그림과 같은 고기잡이 그림이 있는가 하면, 독특한 고기잡이 그림도 있다. 바로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다. 이는 이름 그대로 어부와 초부(樵夫, 나무꾼)가 서로 묻고 답하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이명욱(李明郁, 1640년경~?)의 <어초문답도>. 여기엔 두 사람이 등장한다. 오른쪽 사람을 보니 물고기 두 마리를 줄에 꿰어 오른손에 들고 왼손으론 낚싯대를 들어 어깨에 걸쳤다. 반팔에 바지를 걷어 올리고 맨발 차림이다. 영락없이 물가를 다녀오는 모양새다. 왼쪽 사람을 보니 허리춤에 도끼를 찼다.

나무 하는 도구임에 틀림없다. 도끼를 꽂고 장대를 어깨에 멨으니 나무꾼, 초부일 것이다. 두 사람의 주변엔 갈대가 풍성하다. 두 사람은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것 같다. 그런데 이들의 표정이 좀 범상치 않다. 나무꾼이나 고기잡이라기보다 무슨 도인이나 학자 같아 보인다. 속세를 떠나 깊은 곳에 들어와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사람인 것 같다. 은거하는 사람, 은일자(隱逸者)인 셈. 그렇다면 이 그림은 단순히 고기잡이와 나무꾼의 만남이 아니라 은일자의 도교적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부와 초부를 인자(仁者)와 지자(智者)의 상징으로 보기도 한다. 이명욱의 그림을 보면 옷 주름 선이 특히 매력적이다. 농담(濃淡)과 강약에 변화와 생동감이 넘친다. 그래서 옷자락이 살아 있는 느낌을 준다. 얼굴 수염 하나하나까지 그대로 생생하다. 도인의 풍모를 지닌 초부는 왼손으로 뒤쪽을 가리키며 어부에게 무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모양새다. 산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부지런히 설명하는 것 같다.

 아마 인생과 자연의 철리(哲理)일 것이다. 주변의 총총한 갈대 숲이 무언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런 대화를 청담(淸談)이라고 한다. 어부와 나무꾼을 소재 삼아 은일과 청담의 경지를 나타낸 그림, 어초문답도. 조선 중기에는 어부와 나무꾼이 길에서 상봉하는 모습을 주로 그렸다. 후기부터는 서로 마주앉아 한담(閑談)하는 장면이 많아졌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년)의 〈어초문답도〉가 대표적이다. 정선의 작품은 좀 다르다. 진경산수화의 대가답게 중국식이 아니라 우리식으로 풀어 그렸다. 나무꾼은 지게 가득 나무를 해오다 어부를 만나 지게를 내려놓고 앉아 대화를 나눈다. 저 지게를 보니 이 나무꾼은 정말로 나무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지게를 내려놓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휴식이다. 이는 이명욱 <어초문답도>와 다른 분위기다. 이명욱 그림에선 물고기와 나무가 중요하지 않다.

어부와 나무꾼은 인자와 지자의 상징일 뿐, 그 상징을 통해 삶의 철학을 표현하면 되었다. 그러나 정선의 <어초문답도>에서 어부의 물고기, 나무꾼의 지게와 나무는 상징도 상징이지만 그 자체로 중요한 존재다. 생활에서 매우 유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선의 어부는 망태까지 준비했다. 이왕이면 더 많은 고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의 양식을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생활적이다. 정선의 <어초문답도>는 이렇게 생활 속으로 성큼 들어왔다. 그림 속 배경 또한 우리의 국토다. 두 사람의 얼굴도 도가적이라기보다는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다. 흥미로운 변화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조선 시대 고기잡이 그림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물고기 한 마리를 잡거나 나무 한 단을 해도 그것을 통해 자연을 생각하고 삶을 돌아보았던 청담(淸談)의 마음. 노장의 고고함이든 일상의 소박함이든 거기엔 여유와 사색이 있었다. 어수선한 이야기가 넘쳐나는 요즘, 옛사람들의 고기잡이 청담에 귀 기울여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출처 : 한국문화재재단   글˚이광표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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