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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겨도 좋다, 우리 민족을 꼭 닮은 '장승'
15-07-10 00:22

 
“퉁방울 같은 눈, 주먹 같은 코, 반은 썩고 그나마 성한 것이 들쭉날쭉 제멋대로인 이, 귀 밑까지 찢어진 입, 게다가 몇 년 만 지나면 비바람에 색단장은 말끔히 사라지고 패인 나뭇결이 흉측한 주름을 만들어 볼썽사납게 된다.”
 
민속학자 김두하 선생이 표현한 장승의 모습이다.
 
예로부터 마을 공동체 신앙의 상징으로 나무나 돌에 사람 모양을 새겨 마을 입구에 세웠던 장승은 불상처럼 화려하지도 잘생기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극정성으로 모시지 않아도 군소리 한마디 없이 꿋꿋이 서서 마을 입구를 지키며 민중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호흡하여 온 것이 장승이다.
 
 장승에 대한 최초 기록인 전남 장흥 ‘보림사’에 있는 보물 158호 ‘보조선사창성탑비’의 비문에 의하면 ‘건원(乾元) 2년(759)에 신라 경덕왕이 명령하여 장생표주를 세우게 했다.’고 쓰여 있다.
장승의 역할은 다양하다. 마을에 흉년, 재앙, 유행병 등을 가져오는 귀신이나 역신을 겁을 주어 쫓아내는 부락수호의 임무가 대표적이다. 또한 마을 초입에 세워져 옆 마을과의 경계를 알렸고, 조선시대에는 나그네에게 길을 알리는 노표(路標)가 되어줬다.
현대 의술이 발달하면서 전염병에 의한 피해와 두려움이 사라졌고, 영농 기술의 발달로 자연재해가 농작에 미치는 영향은 조금씩 통제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우리 전통문화 와해 정책과 현대산업화가 급속히 진전되며 민속문화로서의 장승의 가치와 중요성이 점점 퇴색되는 듯했다.
 하지만 끊어질 것만 같았던 장승의 맥을 보존하고 지켜 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들로 오늘날 우리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장승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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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군 ‘추령장승촌’과 안동 장승공원인 ‘목석원’은 장승이 현대조각을 만나며 사람들에게 친숙한 예술로 변모한 모습을 접할 수 있는 곳이다. 또 함안군은 매년 장승문화축제를 열어 일반인도 장승을 비롯한 솟대를 직접 제작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고 있다.
중요무형문화재 이수자 김종흥 장인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무섭게 표현됐던 과거 장승과는 달리 활짝 웃다 못해 입이 귀에 걸린 표정, 장난기가 가득한 표정 등 해학적인 표정의 장승을 조각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해학을 느끼게 한다. 더불어 장승을 만드는 과정을 행위예술로 보여줌으로써 장승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지난 세월 묵묵히 공동체 정신을 이어 온 장승. 그 예술적·문화적 가치의 재평가를 통해 우리의 전통을 이어가고 마을의 행복을 전하는 ‘행복안테나’가 되길 기원한다.
출처: 농촌진흥청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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