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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영나전칠기, 나전칠기(螺鈿漆器)란 목기(木器)의 바탕을 소재로 나전을 가공하여 부착하여 칠을 한 공예품을 말한다.
 

통영 나전칠기
나전칠기는 옛부터 통영에서 유명한 수공업제품으로 나전이란 야광패나 전복껍데기 같은 조개 껍데기를 사용하여 무늬대로 잘라 목심이나 칠면에 박아 붙이는 칠공예기법을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자개라고 하였다. 나전칠기란 자개 조각을 여러 문양으로 박아넣어 조각한 칠기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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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칠기(螺鈿漆器)란 목기(木器)의 바탕을 소재로 나전을 가공하여 부착하여 칠을 한 공예품을 말한다. 고유어로는 자개박이라고도 하며, 널리 대모(玳瑁), 호박, 상아, 보석등의 소재로 이용하는 것도 포함한다. 나전칠기는 대한민국 고유의 기(器)이다.

나전칠기장
나전칠기장란 조개·소라·전복 등의 껍질로 기물(器物)의 면과 가구의 면을 칠과 함께 장식하여 완성한 나전칠기 기능이 뛰어난 사람을 말한다. 곧 나전칠기는 옻칠한 농짝이나 나무 그릇 등에 진주빛이 나는 자개조각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박아 붙여서 장식한 공예품이다.

역사
나전기법은 중국 당나라 때에 성행하였으며 그것이 우리 나라와 일본에 전하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 전래의 초기에는 주로 백색의 야광패(夜光貝)를 사용하였으나 후대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청록빛깔을 띤 복잡한 색상의 전복껍데기를 많이 사용하게 되었다.

고려시대 나전에 관한 문헌상의 첫 기록은 11세기에 문종이 요나라 왕실에 나전칠기를 선물로 보냈다는 동국문헌비고의 기록이며, 12세기 초부터는 교빙지 交聘志에 고려의 나전제품이 빈번하게 기재된다. 당시의 고려 나전에 대한 평가는 1123년 고려에 왔던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쓴고려도경에 잘 나타나 있다.  그릇에 옻칠하는 일은 그리 잘하지 못하였지만 나전 일은 세밀하여 귀하다고 할 만하다.”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릇의 옻칠이 그리 좋지 못하다는 것은 주칠·채칠(彩漆조칠(彫漆)등 화려한 칠기법을 별로 구사하지 않았다는 지적일 것이다. 또한 기병이 탄 안장은 매우 정교하고 안장을 나전으로 꾸몄다.”고 한 것으로 보아, 고려 나전칠기의 정교함을 다시 한번 알 수 있다
나전이라는 말은 한국·중국·일본에서 공통적으로 쓰이는 한자어이며, 우리 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자개라는 고유어를 써 왔다. 따라서 그 만드는 일을 자개박이또는 자개박는다라고 일컫는다. 우리 나라의 나전칠기는 일반적으로 목제품의 표면에 옻칠을 하고 그것에다 한층 치레 삼아 첨가하는 자개무늬를 가리키며, 그런 점에서 목칠공예에 부수되는 장식적 성격을 띠고 있다
이규경(李圭景)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는 자개(紫蓋)’라고 기록하기도 하였지만, 이는 음차(音借)한 표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11세기 고려 때의 언어를 기록한 계림유사 鷄林類事에서 나왈개개(螺曰蓋慨)’라 했는데, 그것이 자개差慨 오기임이 사실이라면 일찍부터 자개라고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상품정보
나전이란 나()는 나선형의 껍질을 가진 패류를 가리키는 동시에 장식에 쓰이는 각종 패류를 칭 한다. ()은 금화식(金華飾)이라 할 만큼 황금으로 장식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전이란 패류를 가지고 장식하는 것 또는 장식된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나전칠기(螺鈿漆器)란 나무와 와태(瓦胎), 가죽, 대나무 등속의 기물에 옻칠을 하여 밑바탕을 처리한 위에, 영롱한 자개를 톱으로 자르고 줄을 쓸어 상사칼로 끊어가면서 정교하게 문양을 붙인후, 다시 옻칠을 하여 완성시킨 기물을 말한다.통영의 나전칠기는 1604년 이경준 제6대 통제사가 통제영을 이 고장으로 옮기면서 육방을 설치하여 공방에서 진상품을 비롯하여 다양한 공예품을 생산, 조달하는 일을 전담케 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일제시대에 청패세공의 기술로 발전을 가져오다가 1926년 파리의 만국박람회에서 전성규와 김봉룡의 작품이 입선함으로써 우리 전통공예의 우수성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이를 계기로통영자개는 새로운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나전칠기 기법에는끊음질줄음질로 구분되고 있는데, 통영에서는 끊음질을 주로 하고 있다.
1962<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됨에 따라 1966년 통영나전칠기(줄음질)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로, 1975년에는 끊음질이 제54호로 지정관리되어 오다가 19953월 끊음질과 줄음질을 통합하여 나전장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근래에 들어 나전은 칠기공예품에 국한되지 않고 장식용품(단추,악기, 액세서리 등),건축자재 (인테리어)등에 새로운 소재로 이용되어 그 활용범위가 다양화 되어 가고 있다.
통영이 나전칠기의 본 고장이 된 것은 400여년을 거슬러 올라가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 시절 설치한 12공방 중 상하칠방에서 유래한다.
통일신라시대; 칠공예품은 현재 분명한 예는 없으나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칠전이라고 하는 관청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관영의 칠공품제작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 나전이 융성한 시대이며, 고려사, 고려도경, 동국문헌비고에기록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유물도 전승되고 있다. 동국문헌비고에 의하면 고려 문종(재위;10461083) 때 고려가 요()에 나전칠기를 예물로 보냈다는기록이 있다. 고려도경에 저자 서긍(徐兢)은 나전칠기의 양상을 매우 자세하게 전해주고 있다. 이러한 목칠나전의 정품들은 당시 관영 공예품 제작소였던 중상서에서관장하여 양산된 사실이 고려사 식화지(食貨志)에 기록되어 있다. 이 중상서는 목종 때 설치되어 고려 말기까지 존속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고려대장경이 간행되면서 그 경책(經冊)을 넣을 나전경상을 만들기 위하여 1272(원종 13)에 전함조성도감이 설치되었고, 이때 만들어진 경상류가 지금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미국,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의 미술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나전의 명품들이다
고려나전은 문양에 있어 국당초의 나전문양과 청자상감문양이 주류였다. 또한 주색과 황색의 복채를 한 대창을 박아서 장식하는 대창복채법과 뿔을 사용한 화각장기법은 한국공예의 독자적인 칠공예이다
11세기에는 외국에 나전칠기를 예물로 보낼 만큼 뛰어난 작품을 생산하였으며, 그 유물들이 실증하듯이 11~12세기 무렵의 고려 나전기술은 그 절정기였다. 그 바탕은 통일신라시대의 나전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보이며, 고려가 이어받아 오늘날 고려나전에서 볼 수 있는 분명한 민족양식으로 정착시킨 것이다
13세기 후반부터 고려 나전공예는 고려왕조의 쇠퇴와 더불어 고려청자가 그러하였듯이 낮은 조화를 거듭하여, 나전 또한 그 의장과 기법이 성글고 거친 조선 전기 나전의장으로 전환되었다
15~16세기의 나전의장은 연당초, 쌍봉, 쌍룡, 보상화 무늬 등 고려시대의 도안이 아주간략 해지고, 아울러 표현이 대형화되었다
17~18세기에는 전술한 주된 조류가 쇠퇴하면서 점차로 매죽, 화조 등 약화된 그림의 의장이 우세해지며, 이 시대의 청화백자의 도문과 더불어 순정적인 표현이 많아졌다
19세기에는 기법에 끊음질이 성행하고, 문양보다는 자연묘사가 흔해지면서 십장생과 산수 풍경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많아졌다. 그리고 주제를 익살과 동심적으로 표현하는 기풍이 늘어 색다른 치기의 미()로써 조선 후기의 나전의장이 지니는 하나의 매력을 형성하기도하였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나전공예는 근근히 그 명맥을 이어오다가 8 ·15광복과 더불어 다시 개화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경제가 성장기에 접어든 1960년대부터는 나전공예 부문에서의 부흥기를 맞게 되었다

관련근거 및 출처
[螺鈿漆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동국문헌비고, 교빙지,계림유사, 고려사식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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