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천강수라쌀, 2009 청와대 쌀 납품 , 진수(珍羞), 수라(水刺)쌀 , 탄화미, 고대미(古代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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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강 수라쌀’
은 청정지역 홍천의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기름진 토양에서 생산된 벼를 품종별 등급별로 수매하여 저온 보관 등 엄격한 수매관리와 최신 도정시설로 가공하여 맛과 품질에서 대내외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해발 70~400m의 다양한 지대에서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의 다품종(오대, 대안 등)이 재배되고 있고,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큰 곳에서 여물어 그 맛과 품질이 뛰어나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청와대 납품은 화촌 농산(주)미곡종합처리장에서 하였으며, 그동안 ‘홍천강수라쌀’을 5대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종자 보급과 친환경비료, 도정시설 지원, 브랜드 홍보 등 생산에서 유통에 이르기까지 부단한 노력의 결과 대내외 이미지 상승이 소비로 이어지는 등 결실을 맺고 있다.- 2003 고품질 쌀 생산평가 전국 최우수상- 2004 전국전업농쌀품평회 우수상- 2005년부터 청와대 경비단 쌀 납품- 2007 고품질쌀생산 우수 전업농선발대회 금상- 2007 탑라이스 생산단지 농산물이적추적관리 등록- 2007 탑라이스 생산단지 GAP(우수농산물관리) 인증- 2009 청와대 쌀 납품
우리나라에서 쌀농사가 시작된 것은 신석기시대 후기, 즉 기원전 2000∼3000년경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 뒤 삼국시대까지 쌀농사는 아주 원시적인 방법에 의하여 이루어졌으며, 수도 기술이 전면적으로 파급된 것은 삼국정립 이후 1, 2세기경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 백제의 쌀농사에 관한 기록이 많은 점으로 미루어 삼국시대에 쌀농사가 상당히 발전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쌀이 실제 국민들의 주식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조선시대부터라고 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쌀농사는 상당히 보급되었지만, 고구려만 하더라도 콩이 주된 식량작물로 재배되고 있었다. 조선 창업 이후 치산치수에 역점을 두고 많은 권농정책이 추진된 결과, 쌀 생산은 꾸준히 증가함으로써 수백 년을 이어오는 동안 쌀은 우리의 주식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진상품관련근거 쌀은 경기도(이천, 김포) 전라도(고창, 곡성, 광주, 구례, 남평, 능주, 동복, 무안, 무장, 무주, 부안, 순창, 영광, 옥과, 옥구, 용안, 운봉, 임실, 장성, 창평, 태인, 함평, 화순, 흥덕, 정읍, 임피, 고부, 전주, 만경, 김구, 김제, 남원, 담양, 여산, 익산, 진산)에서 대전, 왕대비전, 혜경궁, 중궁전, 세자궁에 진상하였다는 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춘관통고, 공선정례에 기록되어있다.
홍천군 서석 미약골에서 발원하여 홍천군 10개 읍면의 지천을 모두 합하고 포용하여 북한강에 합류 한강으로 흐르는 홍천 강은 비옥한 홍천 땅을 적시는 젖줄이다. 여기서 먹고 자라난 수라 쌀은 유기농으로 농사지은 무공해 쌀로서 미질과 영양함유량이 풍부한 청정미다. 옛부터 나라님의 수라상에 오르는 진수(珍羞)라 하여 수라(水刺)쌀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판매되어 애호 받고 있는 홍천강 수라쌀은 홍천군의 5대 명품 중에 하나다. 수라 쌀은 엄선하여 수매한 벼를 최신시설에서 도정하여 관리 판매된다.홍천농협 미곡종합처리장 http://www.hcari.co.kr/ -2008년 GAP 우수농산물관리지정시설로 인증 받음
-㈜농심 ‘고향 산천 강원도쌀밥 ’즉석밥 인기몰이
-화촌농산, GS마트•백화점 공급 등 전국화 심혈
-홍천강 수라쌀로 만든 즉석밥 ‘고향산천 강원도쌀밥’.홍천 5대명품인 홍천강 수라쌀이 한국의 대표적인 쌀 브랜드임이 입증됐다.
-2010년 화촌농산은 지난해말 홍천강 수라쌀 3t을 ㈜농심에 납품한 것을 비롯해 현재까지 10여t을 납품하고 있다.
-농심측은 홍천강 수라쌀을 이용, ‘고향산천 강원도쌀밥’이라는 햇반으로 일반 시중에 유통해 소비자들로부터 커다란 인기를 끌자 홍천강 수라쌀 공급 물량 확대를 요청하고 있다.
그 동안 도정에서 판매에 이르기까지 꾸준한 품질관리로 소비자로부터 좋은 호응을 얻어 온 화촌농산은 최첨단 도정시설을 갖춰 전국 각지에서 많은 농협 관계자들이 벤치마킹하는 등 홍천강 수라쌀의 고급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고향산천 강원도쌀밥’ 햇반 브랜드가 청정 홍천의 이미지와 맞물려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각지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 향후 쌀 공급량도 크게 늘 것으로 기대된다
쌀은 보리, 밀과 함께 세계적으로 중요한 농산물이다. 세계 총생산량의 약 92%는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며, 또 그 대부분을 아시아 사람들이 먹고 있다. 한국도 쌀의 주요 생산국의 하나이고, 또 쌀은 한국인의 주식이다.
벼의 재배 기원에 대해서는 고고학자들이 많이 연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인도에서는 BC 7,000~5,000년대에, 중국에서는 BC 5,000년경(神農時代)에 벼를 재배하였다고 한다. 한국에는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사실은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발굴된 탄화된 쌀이나 벼의 탄소 동위원소 연대추정(carbon dating) 및 기타 고고학적 증거로부터 짐작할 수 있다.
한국에 쌀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잡곡(피, 기장, 조, 보리, 밀 등)을 주식(主食)으로 하였으나 1천여 년 전, 즉 남북국시대부터 벼의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쌀이 우리 식생활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결국 쌀이 들어오면서 분식(粉食) 중심에서 쌀밥 중심의 식생활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한국에서 쌀이 차지한 정치적, 경제적, 농업기술적 위치는 너무나 뚜렷하다.
우리 선조가 쌀을 먹기 전에는 지금 말하는 잡곡과 맥류를 주식으로 하였다. 인류가 농업을 시작한 것이 약 1만년 전이라고 하는데, 이 무렵에 세계 각 지역에서 곡식을 재배하여 식량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보리와 밀 그리고 잡곡류(피·기장·조·수수 등)의 재배는 각기 중동·인도·아프리카 등의 지역에서 시작되어 중국을 거쳐 우리 나라에 전파되었다.
쌀의 재배가 처음으로 이루어진 곳은 인도 동북부 지역인 아삼(Assam)에서 중국 윈난(雲南)지방에까지 걸친 넓고 긴 지대라고 보고 있다. 연대는 약 6,000∼7,000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 지대에서 방사형으로 아시아 각 지역에 전파되어 간 것이다. 그 한 경로는 양쯔강하류로 뻗어나가 다시 북으로 올라가 황하 유역으로 퍼졌으며 또 다시 동으로 꺾어져 우리나라로 통하였다.
1977년에 경기도 여주군 흔암리에서 발굴된 탄화미(炭化米), 그리고 그 뒤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토된 탄화미는 그 동안 발견된 고대미(古代米) 유물로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연대는 다 같이 3,000여년 전으로 측정되었으므로 청동기시대에 이미 이들 지역에서 쌀을 생산하였다는 증거가 된다. 이 두 군데에서 다같이 쌀과 함께 조·기장·수수·보리도 출토된 것을 보면 그 당시의 식량의 모습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북쪽을 통하여 들어온 쌀 재배는 우리나라 남부로 파급되면서 기후와 지세 그리고 수원의 편리 등 유리한 조건으로 인하여 영남지방과 호남지방에서 특히 활발하게 되었다. 삼국시대에 있어서 백제·신라의 쌀 생산이 국가규모로 장려되었고, 특히 통일신라시대에는 쌀이 주곡 중에서 제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조세(租稅)의 주대상이 쌀이었으니 조(租)가 벼의 뜻으로 전용된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쌀농사에 관련된 세시풍속도 많이 생겼고 논을 뜻하는 답자(畓字)도 창제되었다. 쌀도 처음 들어왔을 때에는 다른 곡식들과 같이 분식(粉食)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나, 점차 밥을 지어 먹는 입식(粒食)으로 변하였을 것이다. 분식으로는 시덕(떡의 원형)을 거쳐 떡의 형태로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으나, 삼시(三時)의 주식으로는 입식하는 밥으로 변하였다. 쌀로 밥을 짓는 틀은 처음에는 시루로서 오늘날 고대의 시루가 많이 출토되고 있다. 황해도 안악의 고분에 나타난 벽화에 부엌에서 시루로 밥을 짓는 광경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구려의 귀족들은 쌀밥을 주식으로 하였던 것 같다.
통일신라 때에 주식의 기반을 굳힌 쌀은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더욱 일반화되어 쌀 증산에 모든 힘을 기울였다. 수리 강화, 재배법 개량, 경지면적 확대, 쌀창고 증설 등 미곡증산에 박차를 가하였다. 쌀을 화폐로까지 사용한 때가 있을 정도였다. 인구가 증가하고 쌀 선호도가 높아짐에 따라 쌀의 증산은 더욱 필요하게 되었다. 통일신라의 주식 유형을 보면 북부는 조, 남부는 보리, 귀족층은 쌀이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쌀은 물가의 기준이요 봉급의 대상으로 할 정도로 귀중한 존재가 되었다. 쌀의 생산량이 좁쌀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차차 좁쌀보다 많아져 곡류의 대표격이 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온 후부터라고 알려진다.
조선시대로 내려오면서 미곡생산 제고의 노력은 다각도로 베풀어져 재배면에 있어서는 모내기법의 전국화, 함경도 변경지대의 개답(開畓) 시도 등 여러 가지 정부노력의 예를 들 수 있다. 일상 식탁의 주식으로서의 쌀의 대종적위치(大宗的位置)는 물론 여러 가지 가공식품을 개발할 수 있는 소지를 가지고 있었다.
어느 쌀 제품이 어느 때 생겼는지 현재로서는 추적할 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쌀 이용이 절정에 달하였다고 볼 수 있다. 순서 없이 보기를 들면 우선 떡류를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식품으로 엄밀히 말하여 병(餠:중국의 소맥제품)도 아니며 과(菓)도 아니다. 떡에는 시루떡·백설기·절편·계피떡·송편·흰떡 등 여러 종류가 있고, 각 종류에는 수없는 가짓수가 있어 떡의 총 가짓수는 100가지가 훨씬 넘을 것이다.
또한 쌀은 발효과정을 거쳐 탁주·약주·소주를 제조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수백 가지 주류를 양조할 수 있었다. 또, 쌀은 엿기름으로 삭혀 감주(또는 식혜)와 엿을 만들고 또 탁주 밑으로 증편을 만들었다. 쌀을 쪄서 말린 휴대용 비상식품도 있고 쌀을 벼의 상태로 쪄 정백한 찐쌀도 만들었다. 전자는 뜨거운 물에 담가 인스턴트식 밥을 만들 수 있는 것이고, 후자는 영양식품(비타민 B1이 백미 속에 침투되어 있음)으로 알려진 것이다. 또, 약밥·미숫가루 등을 비롯하여 죽(粥) 종류도 다양하다.
설날 아침에 지내는 차례에 진설하는 음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떡국이다. 떡국에 넣는 흰떡은 햅쌀을 가루내어 쪄서 떡판에 놓고 메로 찧은 다음에 손으로 길게 원주형으로 떡가래를 만든 것을 썰어서 국에 넣어 끓이는 것이다. 떡국은 차례상에도 오르지만 설날 아침에는 반드시 먹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과 약밥을 지어 먹었는데, 오곡밥은 다섯 가지 이상의 곡식(쌀·조·수수·보리·콩·팥 등)을 섞어 밥으로 지은 것이다. 약밥은 찹쌀·대추·밤·잣과 꿀을 섞어 쪄서 만든 것으로 오래 두고 먹을 수 있으며 정월뿐만 아니라 잔치상에도 늘 오르는 것이다. 동지 후 105일째 되는 날인 한식에는 조상의 묘 앞에 과일·적(炙)·병(餠) 등을 차려놓고 차례를 지내는데, 옛날에는 중국의 고사(故事)에 따라 한식날에는 더운 밥을 먹지 않고 찬밥을 먹었다 한다.
음력 4월에는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꽃을 놓아 기름에 지진 화전(花煎)과 증편을 시식(時食)으로 먹었다. 5월 단오에는 쑥을 뜯어넣은 수리취떡을 해 먹었는데 그 모양이 수레모양과 같았다. 8월 한가위에는 햅쌀로 밥을 지으며 떡을 하고 술(新稻酒)을 빚는다. 떡으로는 특히 오려송편이라 하여 송편 속에 햇콩·햇동부·햇밤 등을 넣는다.
음력 10월(상달)에는 시제(時祭)와 고사(告祀)가 있다. 10월 15일을 전후하여 6대 이상의 조상의 제사를 시제라 하여 조상의 묘 앞에 모여 지낸다. 이때에 반(飯)·병·주찬(酒饌)을 진설한다. 10월의 말날(午日) 또는 길일을 택하여 시루떡을 쪄놓고 집안의 평안을 바라는 고사를 지냈다. 고사는 신령에 바치는 제사로 주부가 지냈으며 성주신(城主神, 집전체 관장), 제석신(帝釋神, 곳간을 맡음), 산신(産神, 안방), 수문신(守門神, 대문), 터줏신 등 여러 군데에 떡을 놓고 고루 절하며 감사하고 무사를 기원한다. 고사떡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팥시루떡으로서 악귀를 물리친다는 붉은색의 팥과 햅쌀가루로 만든 것이다.
동짓날에는 어느 가정에서나 팥죽을 만들어 먹었다. 팥을 으깨거나 체에 걸러서 그 물에다 찹쌀로 만든 새알심을 넣어 죽을 쑨다. 동지팥죽은 먼저 사당에 차례하고 다음 방·마루·광 등에도 한 그릇씩 떠다놓으며 대문에는 죽을 뿌리고 나서 사람이 먹는다. 팥죽이 액을 막고 잡귀를 쫓는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경사에 쓰는 쌀이나 쌀 음식을 살펴보기로 한다. 돌상에는 돌쟁이 바로 앞에 쌀·실·국수·붓·책·활 등을 놓아 돌쟁이가 잡는 대로 장래를 점치며, 상 앞쪽에는 과일들과 더불어 백설기·인절미·수수경단·송편 등을 놓는다. 특히 백설기는 돌쟁이의 순수함을 의미하고 수수경단은 팥과 수수의 붉은색이 어린아이의 재앙을 막아준다는 것이다.
아기를 낳을 임신부의 가정에서는 해산달 3∼4개월 전부터 해산 후에 먹을 미역과 산미(産米)를 좋은 것으로 정하게 보관하였다. 쌀은 돌이나 뉘를 골라낼 뿐 아니라 조각난 쌀까지 골라 버리고 완전한 형태의 쌀만을 썼다. 임신부의 진통이 시작되면 정한 상에 깨끗이 고른 산미를 한 그릇 담고 정한수 한 그릇 떠놓고, 또 산곽(産藿, 해산하고 먹는 미역)을 상 위에 길게 얹고 삼신에게 안산(安産)을 빌었다.
혼례식을 막 끝낸 신랑신부를 위한 입맷상에는 국수장국 등의 음식 외에 찰떡·엿·깨죽·잣죽 등이 놓였는데, 끈질기고 사이좋게 오래 살고 깨가 쏟아지게 잘 살라는 뜻이라 한다. 제상에 올려놓는 밥은 메라 하고 불단에 놓는 밥은 마지(摩旨)라고 한다. 명복을 빌기 위하여 부처에게 드리는 공양을 재(齋)라고 하는데, 밥인 경우에 잿밥이라고 한다.
상례(喪禮)에 있어서 시체에 옷을 다 입히면 염하기 전에 반함(飯含)을 한다. 반함은 쌀을 물에 불려서 사발에 담아 버드나무 숟가락으로 시체의 입을 벌리고 떠넣는 것이다. 죽은 사람이 저승까지 갈 때 먹는 식량이라고 믿는 데서 왔다고 한다.
우리나라 향토신앙에 속하는 굿에서도 제상에 올리는 메와 흰떡이 있다. 예를 들면 제주도의 산간촌에서는 당굿 제상에 곤쌀(美米)과 곤밥(美飯)을 차리는데, 이는 평소에 구경하기 어려운 귀물인 것이다. 동해안의 별신굿에서는 놋동이굿이라 하여 쌀을 담은 놋대야를 무녀가 입에 물고 신령스런 힘을 나타내기도 한다. 또, 어느 굿에서는 염주·엽전·쌀 등으로 점을 치며, 점 결과에 따라 여러 가지 굿을 하기도 한다.
쌀은 발효과정을 거쳐 탁주·약주·소주를 제조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수백 가지 주류를 양조할 수 있었다. 또, 쌀은 엿기름으로 삭혀 감주(또는 식혜)와 엿을 만들고 또 탁주 밑으로 증편을 만들었다.
쌀을 쪄서 말린 휴대용 비상식품도 있고 쌀을 벼의 상태로 쪄 정백한 찐쌀도 만들었다. 전자는 뜨거운 물에 담가 인스턴트식 밥을 만들 수 있는 것이고, 후자는 영양식품(비타민 B1이 백미 속에 침투되어 있음)으로 알려진 것이다.
또, 약밥·미숫가루 등을 비롯하여 죽(粥) 종류도 다양하다.
최근 성인병의 원인중 많은 부분이 식생활과 상호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식생활과 건강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경우 각종 질병예방및 퇴치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그 효과로는 대장에서의 발효과정에서 낙산(酪酸)이 생겨나 대장암의 발생을 억제시킨다.
섬유질 성분이 있어 구리, 아연, 철성분등과 결합하여 우리 인체에 해로운 중금속이 인체에 흡수되는 것을 막아준다.
수분유지력이 커서 변비를 막고, 인슐린 분비는 적어 비만, 고혈압 동맥경화증등 성인병을 예방할 수 있다.
1.쌀에는 당질(탄수화물)단백질,지질,무기질,비타민등 많은 영양소가 들어 있다.
2.단백질은 6~7%로 밀보다 함유량이 적으나 콩과 함께 양질의 단백질로 질적인 면에서 훨씬 우수하다
3.지질은 주로 쌀겨충이나 배아에 분포되어 있는데, 현미의 경우 2~3%,백미의 경우는 0.5%내외이며 올레익산, 리놀레익산, 팔미틱산등 불포화 지방산으로 구성되어 있다
4.비타민 B,E,식이섬유,인,마그네슘등을 함유하고 있다
5.당질(탄수화물)은 그 비중이 78%로 가장 높고 그 대부분이 전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농산물과 수입 농산물]
참고문헌 및 출처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춘관통고, 공선정례, 『한국풍속지』(양재연 외 3인, 을유문고, 1971),『한국의 향토신앙』(장주근, 을유문고, 1975),『쌀의 정치경제론』(김성훈, 시인사, 1984),「함양개평리정씨댁소창(咸陽介坪里鄭氏宅小倉)」(신영훈,『미술자료』, 국립박물관, 1971.12.),『한국전통사회에 있어서의 쌀의 이용』(이춘녕, UNESCO연구보고, 1983),『장기식량수급모형에 관한 연구』(주용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5),『정부양곡관리제도개선에 관한 연구』(주용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86),『전환기 양정의 종합적 개선방안』(김명환 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91),『쌀 어떻게 지킬 것인가』(김성훈 외, 농민신문사, 1992),『곡물의 중장기 수급전망과 대응정책』(이정한 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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