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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시[苧],저마(苧麻), 한산모시,저마•구승백저포•십이승백저포•별승백저포•극상세저포•극세저포•상저포•흑저포•황저포•황세저포…
 


 
모시는 모시풀의 인피 섬유로 제작한 직물을 말하는데, 저마(苧麻)라고도 한다. 계림유사(鷄林類事)에는 “쥬왈모쥬푸왈모시베〔苧曰毛苧布曰毛施背〕”라고 기록되어 있어 일찍이고려시대에도 저마 섬유를 ‘모’, 저마포를 ‘모시베’라고 일컬었음을 알 수 있다. 모시풀 껍질의 섬유로 짠 옷감으로서 원래는 담록색을 띠지만 정련, 표백하여하얗게 만든다. 질감이 깔깔하고 촉감이 차가우며, 빨리말라 여름철 옷감으로 많이 이용된다. 한산모시가 유명하다. 모시는우리나라의 미를 상징하는 여름 전통옷감이다. 백제 때 한 노인의 현몽으로 우연히 발견된 후부터 그 유래를찾을 수 있으니 1,5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만큼역사적 가치가 높아 제작기술을 보호하고자 국가에서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 관리하고 있으며 특히 모시는 소박, 섬세, 단아, 청아함을 복식미의 극치로 여긴 우리 민족이 가장 선호한 직물이었다.

기능보유자
명예 보유자로는 문정옥(중요무형문화재제14호), 기능 보유자로는 방연옥(중요무형문화 재 제14호), 나상덕(충남무형문화재 제1호) 등국가와 지자체로부터 인정받은 전통직조기능 보유자들이 1993년 8월개관한 한산모시박물관에서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한편, 관광객들이 한산모시를 바로알고 체험할 수 있도록하기 위해 모시풀을 처음 발견했던 충남 서천군 한산면에 위치한 건지산 기슭에 모시각, 전통공방, 전수교육관, 토속관 등의 시설을 갖춘 85,000㎡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 책 계림유사는 고려 15대 숙종 8년(1103년)에 송나라사신을 서장관(書狀官)으로 따라온 손목(孫穆)이란 사람이 고려에서 듣고 본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따라서 이 어휘의 생성 시기는 손목이 고려에 왔던 1103년으로잡는다. 물론 기록상 연대일 뿐 모시는 훨씬 더 이전에 이용되었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모시는 순백색이고 비단 같은 광택이 나며 내수력(耐水力)과 내구력(耐久力)이 강하다. 여름철 옷감으로 많이 사용하며, 그 밖에 레이스•커튼•손수건•책상보 등에 사용되고 보통품질은 모기장•낚시줄•천막 등을 만든다. 충청남도 한산(韓山)은 모시의 주요 재배지로서 세모시가 유명하며, 이곳의 모시를 특히한산모시라고 하여 특상품으로 치고 있다. 모시의 생산 지역은 전국 분포와는 달리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으로 극히 국한적이다. 특히 충청도 서천 지역의 모시가 품질과 제직 기술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중에서도 한산의 세모시가유명하다. 한산의 세모시 짜기는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모시의 재배, 제사, 제직의 기능을 이어가고 있다.
 

모시관련 문헌자료
한편 세저, 문저포, 사저포는 고려시대의 특산 저포로서 섬세한 공력으로 제직된 것이다. 이와같은 모시의 제직 기록을 통하여 고려시대가 섬세한 모시직물 제직의 최성기였음이 나타난다. 모시는 우리 나라와 인도•중국에서고대로부터 재배, 사용되었는데 오늘날에는 열대•아열대 지역의여러 곳에서 재배되고 있다. 특히 모시는 소백•섬세•단아•청아함을 복식미의 극치로 여긴 우리 민족이 가장 선호된 직물이었다.
삼국사기에 신라에서 삼십승저삼단(三十升紵衫段)을 당나라에 보낸 기록이 있는데, 삼십승이란 직물 폭간에 2,400올의 경사가 정경(整經)되어제직된 것이다. 고래로 모시는 일정한 포 폭이 정해져 있었다.
 
조선시대의 국조오례의 國朝五禮儀에는 상복의 포 폭이 1척6촌이었던 기록이 있으며 또 ‘고자포폭활2척2촌(古者布幅闊二尺二寸)’이라고 하는 기록도 있다. 
이 기록의 포 폭은 삼베의 폭이나, 조선시대의탁지준절 度支準折에는 삼베와 모시의 포 폭이 7촌으로 기록되어 있어 삼베와 모시의 포 폭이 같았음을알 수 있다.
국조오례의 의 계량척은 주척(周尺)이며 탁지준절의 계량척은 조선시대의 포백척(布帛尺 : 바느질자)라고 생각된다. 따라서국조오례의의 1척6촌폭과 탁지준절의 7촌폭은 36㎝ 정도이고, 국조오례의의 2척2촌은 약 50㎝가되는 것이다.
 
고려시대의 출토 모시의 포 폭이 36㎝정도인 점에서 국조오례의의 고자란 적어도 고려 이전을 말하는 것이 된다. 곧 신라시대의 삼십승저삼단의폭이 50㎝ 정도로서 조선시대와 고려시대의 36㎝ 포 폭으로환산하면 20여 승이 되는 것이다. 
고려시대에도 20승백저포를 제직한기록이 있어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의 모시 제직 기술은 같은 수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는 혜종 때 진나라에 보낸 세저에 대해‘마저여설(麻紵如雪)’이라고 기록하고 있어 세저의깨끗함을 나타내고 있으며, 세저뿐만 아니라 문저포(紋紵布)•사저포(紗紵布)도 제직해원나라에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특히 원나라에서 이들 직물을 선호해 수출을 요구해 온 기록도 많다. 
문저포는 고려 충렬왕 때에 여승이 공주에게 바친 기록도 있다(그 무늬는 화문이었다고 한다. ).
세저•문저포•사저포는 고려시대의 특산 저포로서 섬세한 공력으로 제직된 것이다. 이와 같은 모시의 제직 기록을 통해 고려시대가 섬세한 모시 직물 제직의 최성기였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세저 이외에도 홍저포•황저포 등 염색 모시도 제조한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저마•구승백저포•십이승백저포•별승백저포•극상세저포•극세저포•상저포•흑저포•황저포•황세저포•홍세저포•자세저포•청저포•아청저포•예단백저포•진헌백저포 등의 기록이 각종 문헌에 나타나 있다.
 
조선시대 이후의 기록에는 생저(生苧)•백중저(白中苧)•백세저•장성저(長城苧)•장저(長苧)•청양저(靑陽苧)•한산저(韓山苧)•명산저(鳴山苧)•황저포 등의 기록이 있으며,백당저•생당저•세당저 등의 기록도 있어, 중국 모시의 유입 현상도 나타난다.
모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15승(보름세)을 제직했으나 근간에는 12승을극상으로 제직하고 있다. 이것도 한 필을 말아 손아귀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섬세하니 옛 모시의 섬세함을미루어 알 수 있다.

진상품관련근
모시는 강원도(강릉대도호부, 삼척도호부, 양양도호부(속초)) 경상도(울산군, 의령현,함안군) 전라도(고산현(완주), 금구현, 김제군, 담양도호부, 보성군, 부안현, 순천도호부, 임실현, 장성현, 정읍현, 진원현, 태인현, 함열현, 함평현, 해남현, 무안현(목포)(신안)) 충청도(면천군, 부여현, 서산군, 서천군, 석성현(부여), 연산현, 이산현, 임천군, 정산현, 청양현, 한산군, 홍산현) 황해도(강령현), 경상도(울산군, 의령현, 함안군)에서 진상하였다는기록이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되어있다.
 
기록에 보면 모시는 신라 제48대경문왕(861~874 AD) 때 우리나라의 수출품목 중 하나였다고 하니 모시를 직물에 사용한 것은 퍽오래된 일이다. 날실과 씨실 모두 저마를 사용하여 짠 모시를 생모시라 하며, 대개 색깔을 내기 위해 쌀겨와 치자물에 담궈 놓는다. 
생모시를 희게 표백한 것을 백모시라 하는데 까실까실하여 여름철 옷감으로 쓰이며, 옥색・치자색・분홍색 등으로 염색하여쓰기도 한다. 또한 백모시를 다듬이질하여 봄・가을에 사용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 두산백과,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어원 500가지, 2012.1.20, 예담(위즈덤하우스)),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직물의 종류에 대한 연구(민길자,국민대학교 교육논총 6, 1987), (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패션전문자료사전,1997.8.25, 한국사전연구사), 고려사, 계림유사, 국조오례의, 탁지준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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