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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상 궁궐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었을까?
15-07-07 22:34

장고(醬庫)를 아시나요?
겨우내 담가두었던 장을 다 먹고 싱그러운 하늘 아래 새로운 장을 담그는 계절이 돌아왔다. 예부터 장담그기는 한 해의 음식의 맛을 결정하는 중요한 행사로 여겨져왔다. 우리 선조들은 날을 정해 장을 담가 뒷마당에 두고 특별히 관리하면서 먹어왔다. 그런데 여염집이 아닌 궁궐에서는 어떻게 장을 담그고 또 어디에 보관하였을까? 궁궐에서는 ‘장고(醬庫)’라는 곳이 그 역할을 하였다. ‘경복궁에 ‘장고’라는 곳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만큼 장고는 다소 낯선 장소다. 장고는 말 그대로 장을 보관하는 창고라는 의미로, 주로 궁중 연희나 제례에 쓰이는 장을 보관하던 곳이다. 경복궁 장고는 경회루 뒤편에 위치해 있는데, 불과 10여 년 전에 발견된 장소로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낸지 얼마 되지 않았다. 2001년에 최초 발굴조사를 시작하여 2005년 복원되었는데, 경사지를 활용한 계단식 장독대의 모습과 각 지방의 특색을 지닌 우리의 아름다운 독을 볼 수 있다. 현재는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자유롭게 관림이 가능하다.

정조의 효성까지 담은 역사적 사료,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봄과 가을 두차례에 걸쳐 경복궁 장고에서 궁중장담그기 행사를 진행한다. 지난 4월에 진행된 행사에서는 『원행을묘정리의궤(園行乙卯整理儀軌)』 (이하 '정리의궤') 에 나타난 궁중의 일상식을 한복려 선생(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궁중음식 기능보유자)이 직접 강의하고 시연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한복려 선생은 궁중음식 재현에 앞서 정리의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정리의궤는 정조의 어머니인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1795년)을 기록한 의궤로 도성과 수원행궁을 오가며 진행된 8일간의 다채로운 행사를 기록한 내용이다. 정리의궤에는 매우 세세한 내용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8일간의 식사 대목에는 매 끼니의 반찬과 상차림의 모습, 예산과 식비까지 적혀 있다. 정리의궤가 특히 중요한 이유는 일반적인 궁중음식 기록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일상식’까지 적혀 있기 때문이다. 일상식이란 밥을 주식으로 한 보통식을 일컫는다. 정리의궤는 궁중음식뿐 아니라 작은 밑반찬까지 세세하게 담고 있어 당시 궁중음식 문화를 재현함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정리의궤의 <찬품(饌品)>조에 나타난 상차림의 종류로는 대전과 자궁에게 올리는 ‘수라상(水刺床)’, 군주에게 올리는 ‘진지상(進止床)’, 궁인 및 내외빈·본소 당상 이상에게 올리는 ‘반상(飯床)’ 등이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이동 중 휴식 시간에 곡물 등을 삶아 마실 수 있게 만든 ‘미음(米飮)’이 있고, 간식상이라 할 수 있는 ‘소반과상(小盤果床)’도 소개되어 있다. 한편, 임금을 호위하는 수많은 군인들에게는 식사용으로 절편 형태의 떡을 제공했다고 한다. 특히 정리의궤에서는 정조에게 올린 반찬의 수보다 혜경궁 홍씨에게 올린 반찬의 수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자신은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도 어머니에게는 최고로 대접하고자 하는 왕의 효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예부터 장은 음식의 가장 기본이 되는 식재료이기 때문에 장고는 나무가 없고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위치해 있었고 출입 또한 제한되어 있었다. 그리고 부정(不淨)을 막고 벌레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장독에 대추, 고추 등의 붉은색 열매를 새끼줄에 엮어서 두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감장(甘醬)’, ‘축귀(逐鬼)’ 등의 단어가 적힌 버선 모양의 종이를 붙여두어 장이 달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부정을 막아달라는 기원을 표현한 경우도 있다.
 
봄의 약식동원(藥食同源), 장김치와 취나물
행사 당일에는 비가 내려 장을 담그지는 못했지만 장고에서 진행되는 행사인 만큼 간장을 사용한 음식 시연을 진행했다. 처음으로 시연한 음식은 장김치였다. 장김치는 무와 배추를 간장에 절여 미나리, 갓, 배, 밤 등을 섞어 담근 물김치로 그 모양새가 마치 동치미와 비슷하다. 위의 장김치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 풍속집인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등장한다. 하지만 김장문화의 역사는 멀게는 삼국시대까지 올라가는 우리 인류의 유산이다. 이에, 문화재청에서는 현재 ‘김치와 김장문화’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 신청한 상태다. 다음으로 한복려 선생은 지금과 같은 봄이 제철인 취나물을 이용한 취나물 무침을 선보였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란 ‘약’과 ‘먹는 음식’은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의미인데, 선생은 제철음식을 먹는 것이야말로 약식동원이라며 강조했다. 간장에 살짝 버무린 취나물 무침은 나물 음식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한번 권해보고 싶을 만큼 신선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었다. 다음 장고 장 담그기 행사는 9월경에 있을 예정이다. 만약 행사 전에 경복궁을 찾게 된다면 경회루를 조금 지나 자리 잡고 있는 장고에 방문해볼 것을 추천한다. 마치 시간이 멈춰 조선시대에 와 있는 것 같은 경복궁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숨 쉬고 있는 장독의 숨소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출처:한국문화재재단 글˚박은지, 원준석, 이은지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대학생기자단 징검다리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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