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시간 역사 속 <심이야기>는 중국의 아편전쟁을 통해 서양으로 수출된 고려인삼에 관련된 이야기 였습니다. 홍삼이 아편 해독에 뛰어난 효능이 지닌 약재로 명성을 떨쳤던 고려인삼은 광저우를 통해 따르게 서양으로 퍼져나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계기로 인삼에 대해 알게된 서양인들은 중국의 거대한 인삼시장을 주목해 미국산 인삼을 중국시장으로 유입하게 되었는데요. 오늘의 역사 속 인삼이야기는 중국시장에 진출해 고려인삼과 경쟁관계를 갖게된 미국산 인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중국 시장으로 들어오는 미국 인삼
예나 지금이나 인삼의 최대 소비지는 중국입니다. 따라서 중국의 거대한 인삼 시장에 주목한 서양 상인들에 의해 1750년경부터 막대한 양의 미국산 인삼이 중국 시장으로 유입되었습니다. 조선 홍삼의 경쟁자가 등장한 것입니다.
서양에서의 인삼에 대한 최초 기록은 원나라 통치 시기에 중국을 여행한 마르코 폴로(1254~1324)의 『동방견문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1653년 8월 제주도에 표류되어 조선에서 14년 동안 억류 생활을 한 바 있는 네덜란드인 하멜(Hendrick Hamel)이 저술한 『하멜표류기』에도 인삼이 조선의 특산품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인삼의 약효와 특징을 자세히 소개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에 접어든 이후였습니다. 그 첫 기록은 1711년 예수회 선교사로 중국에 파견된 프랑스인 자르투(Jartous)가 중국에서 활동하던 중 인삼의 형태와 생태, 약효와 이용가치 등을 기록한 서간문 형식의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는데요. 이에 의해 고려 인삼에 대한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인식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르투 신부는 이 인삼이 만약 이 지역 이외의 다른 나라에서 생산될 수 있다면 어느 곳보다 먼저 캐나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왜냐하면 캐나다의 산림이나 산악이 달단과 흡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는데요. 이러한 그의 예상은 적중하였습니다.
자르투의 서간문은 1714년에 <Philosophical Transactions of the Royal Society of London>에 <달단인삼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실렸는데 이 기록이 캐나다 몬트리올 근처의 프랑스 선교단의 라피토(Josep Francois Lafitau) 신부에게 전해지면서 본격적인 관심을 끌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서간문 중에 캐나다에서 인삼이 서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서간집에 그려진 인삼 스케치를 원주민인 모호크(Mohawk)족 인디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인디언들은 대번에 알아보고 신부를 대동하여 산중으로 가서 그 실물을 채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것이 아메리카 인삼(panax quinquefolium)이 세계에 알려지게 된 시초였는데요. 이 발견이 계기가 되어 캐나다 및 북미 동부에 인삼 붐을 일으켜 마침내는 중국에 수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위의 그림은 1737년 프랑스 지리학자 당빌(Jean-Baptiste Bourguignon D'Anville)이 발간한 『신중국지도첩』에 수록된 「조선왕국전도」의 오른쪽에 그려진 삽화로, 한복에 모자를 쓴 채 인삼을 들고 있는 조선 노인의 모습이 있는데요. 이 지도는 정확성과 신빙성으로 인해 이후에 발행되는 서양 지도들의 표본이 될 만큼 권위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실린 ‘인삼을 든 노인’은 아직 서양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조선인을 특징 있게 그린 최초의 서양 삽화로서 서양인들에게 인삼, 모자, 그리고 독립 왕국이라는 이미지를 태동시켰습니다.
1747년 식민지 시대 미국의 매사추세츠 스톡브리지(Massachusetts Stockbridge)에서는 선교사들이 동양으로 가지고 갈 무역품 조달에 고심하고 있었는데요. 고민의 실마리는 인삼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1714년 캐나다에서 예수회 라피토 신부가 인체를 닮은 신비한 뿌리를 발견한 바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식물 뿌리가 신비할 뿐, 인삼이 어떠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인식하지 못했는데요.
이후 1750년에는 버몬트(Vermont)에서도 인삼이 발견되었습니다. 문학가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역시 이것을 ‘여태껏 보지 못했던 신비의 뿌리(a plant the virtues of which have not yet been discovered)’라고만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인삼 무역에 대한 경제적 가치에 관심을 가지면서, 1757년(영조 33)부터 미국산 인삼이 청나라에 수출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는 매사추세츠와 코네티컷(Connecticut)에서 북아메리카 인디언인 모호크족이 인삼을 채취하여 알바니(Albany)의 네덜란드 상인에게 팔거나 쇠그릇, 술 등과 바꾸었는데요.
네덜란드 상인들은 허드슨 강(Hudson River)을 따라 대서양으로 나가 영국 런던이나 암스테르담에 있는 동인도 회사에 500%의 이익을 남기고 팔았습니다. 동인도회사는 광둥이나 북경에 가서 청나라 상인에게 판매하였습니다. 이로써 미국과 청나라의 최초의 교역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뒤 오하이오(Ohio) 주나 미시시피(Mississippi) 계곡의 인삼도 청나라에 흘러들어갔습니다. 독립전쟁 직전에는 매사추세츠 서부지방 인삼이 청나라에 수출되었습니다.
미국은 일본과 관련된 인삼 수출업에도 종사하였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 이후 동양무역에 종사하였던 뉴욕이나 보스턴의 미국 선박이 선적한 주요 물품도 인삼이었는데요. 이들은 네덜란드 상인에게 비싸게 팔아 이익을 챙겼습니다. 네덜란드 상인은 치즈나 버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기호를 이용하여 인삼을 팔았습니다. 그 결과 중국 시장에 미국산 인삼이 들어와 고려 인삼과의 경쟁이 불가피해졌습니다.
미국 인삼의 등장에도 무너지지 않은 고려 홍삼의 인기
위 그림은 1806년 프랑스 화가 생 소베가 그린 ‘아시아 왕국의 민족들’이란 시리즈 테마 중 ‘한국의 남녀’라는 제목의 채색판화입니다. 이 판화가 제작된 시기는 서양인들에 의해 공식적인 조선 탐사가 이루어지기 직전으로, 당시 조선은 동양에서 마지막까지 베일에 가려진 미지의 왕국이었습니다.
이 그림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요. 즉 체형은 서구인과 다를 바가 없고, 복장은 그들이 먼저 접했던 동남아시아풍입니다. 이처럼 서양인들에게 한국인은 동남아 열대지역 민족들과 특별하게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우리에 대한 인지도는 매우 약한 수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당빌의 ‘인삼을 든 노인’에서처럼 이 그림에도 모자와 인삼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여행기와 구전을 통하여 얻어진 지식을 바탕으로 인지된 조선의 대표적 이미지가 모자와 인삼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미국산 인삼이 물밀듯 중국으로 들어왔지만 조선 고려 인삼의 명성을 넘어뜨리지는 못했습니다.
미국삼의 수입에도 불구하고 고려 인삼의 브랜드 가치는 흔들리지 않았고, 실제 홍삼 무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1840년대 조선 홍삼이 아편 해독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졌으므로, 고려 인삼은 더욱 명품화되었습니다. 반면 미국 인삼을 중국 시장에 확산하기 위한 전략은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방식이 모두 사용되었으리라 추측됩니다.
광둥무역체제는 영국이 광저우 일구통상제도와 광둥 13행의 독점 타파를 위해 일으킨 아편 전쟁으로 무너졌습니다. 영국의 승리로 홍콩에서 체결된 난징조약은 청나라가 맺은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이었습니다. 청나라는 광저우, 샤먼(厦門, Amoy), 푸저우(福州), 닝보(寧波), 상하이(上海) 등 5개 항구를 개방하게 되었는데요. 이로써 서구와의 무역독점권을 갖고 있던 광둥 13행의 독점적 지위는 사라졌습니다.
서양 상인은 광둥 13행을 거치지 않고 교역이 가능했고, 중국과의 교섭 업무도 13행이 아니라 제 나라의 영사를 통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려 홍삼에 대한 인기는 더욱 폭발하여 1860년대 조선 연안에 중국의 배인 당선과 서양의 배인 이양선이 출몰하고, 이들을 통해 해상 밀무역은 더욱 번성하게 됩니다.
미국 인삼의 중국시장 진출에도 불구하고 고려인삼과 홍삼이 오히려 브랜드가치를 유지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우면서 자랑스러운 이야기입니다. 역사 속 심이야기 다음시간에도 영험한 효능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널리 펴트렸던 역사 속 <심>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된 글>
이철성, 2000, 『조선후기 대청무역사연구』, 국학자료원
이철성, 2007, 「코리아-인삼의 나라」, 『고려인삼의 역사 문화적 가치 재조명을 위한 국제학술 심포지움』
박기수, 1998, 「청대 광동의 대외무역과 광동상인」 『명청사연구』9
이민식, 1998, 「초기 미국의 대조선 교섭에 관한 일 연구-한국문화에 대한 인식문제를 중심으로」, 『문화사학』 8
까를로 로제티 저, 서울학연구소 역, 1996, 『꼬레아 꼬레아니』, 숲과 나무
William Elliot Griffis, "American Relations with the Far East," The New England Magazine, vol XI No3 November 1894
William Elliot Griffis, "Corea, the Hermit Nation", New York: Charles Scrbner's Sons, 1882
출처 : 삼삶스토리 글 : 이성철교수